규정됐다. 흑인 참정권 규정보다 50년이나 늦은 것이었 다. 노예해방운동 당시 노예폐지운동과 여성운동을 연계 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여성운동이 노예폐지운동에 손 상을 줄 것이라는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본격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은 영국을 중심으로 매우 극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1913년 6월 4일, 영국 런던 남부 엡섬다운스에서 열린 경마대회에서 한 여성이 “여성 에게 참정권을!”이라고 외치며 돌진하는 국왕 조지 5세의 말 앞으로 뛰어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는 여성운동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이었다. 중태에 빠진 그녀는 결국 나흘 뒤 세상을 떠났다.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은 1880년대부터 조직화됐 지만 이 무렵 점차 과격해져 유리창 깨기와 방화, 투옥, 단 식까지 불사하며 투쟁했다. 당시 이 같은 ‘전투파’의 행동 을 주도한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돌을 사용하는 것이 결코 감정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돌멩이야말로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 에 “몸을 다치면서 싸울 때보다 유리창을 깨면서 싸울 때 더 많은 진보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런 투쟁의 결실로 여성의 참정권은 19세기 후반 유럽 의 일부 나라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했다. 현존하 는 독립국 중에는 1893년, 뉴질랜드가 최초로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고, 유럽에서는 1905년, 핀란드가 여성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민주주의제도를 도입하기 시작 한 일본은 처음에는 15엔 이상의 직접국세를 납부하는 남 성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다가 1925년, 만 25세 이상 모 든 남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고, 여성은 1945년에서야 선 거권을 부여했다. 그 밖의 나라에서는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여성의 선 거권이 제도화됐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 께 여성을 비롯한 모든 국민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가장 최근에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나라는 2015년 사우디 아라비아다. 1972년 폐지되었던 우리나라 재외국민 참정권은 1997년 재일동포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으로 2009년 인정되었다. 그러나 2010.6.17.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는 “재 외국민 선거권은 형식적인 것으로 투표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서 “공평한 투표법 행사를 보장받기 위해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다시 제기하였 다. 사진은 당시 헌법소원서 제출 모습. 18 시사 속 법률 차별은 가고 인권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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