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5월호

선거권이 부르주아 남성에서 시작해 노동자 남성, 흑인, 여성에게까지 확대되기까지에는 당사자들의 희생뿐 아니 라 임금노동자의 필요라는 시대적 요구, 그리고 전쟁과 같 은 국가 위기상황에서의 기여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또한,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단지 정치적 권리 의 확보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차티스트 운동은 영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투쟁과 공장법 개정투쟁으로 직결 되며, 미국 흑인들의 참정권 운동은 흑인분리정책에 대한 저항과 일치한다. 따라서 참정권 운동의 역사는 보통선거 제도가 전면화되기 전까지는 인권운동과 마찬가지였다. 재외국민 참정권 위해 97년 헌법소원 제기도 프랑스혁명 이후 20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보통선거 제도가 보편화됐지만 지금도 적용되지 않는 예외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외국인이나 재외국민을 들 수 있는데, 둘은 기준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다. 예를 들어 재일 한국인의 경우, 우리를 기준으로 했을 땐 재외국민이지만 일본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외국인이 된다. 하지만 외국인 또는 재외국민에 대한 선거권 부여는 국 가별로도 기준이 다르다. 우선 외국인의 선거권은 핀란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근대 국민국가론에서 국가의 3대 요소는 주권, 영토, 국민 이기 때문에 주권이 없는 외국인의 선거권 배제는 당연하 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이유에서 현재 재일교포들은 일본 내 선거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 같은 민족 입장에서는 부당하 게 보일지 모르지만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의 화교는 1882년 임오군란 때부터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선거권은 물론이고, 1992년 한중 수교 이전에는 토지소유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방선거권은 어떨까? 재외국민과 외국인에 게도 지방선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입장이 공 통되지는 않지만, 지방선거는 체제와 무관하고 지역 내 주 민생활에 국한되기 때문에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05년,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일 정한 기준을 충족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재일교포는 아직 지방선거권이 없다. ‘국적’이 외국인의 선거권을 부정하는 논리로 사용되었 다면 ‘영토’는 한때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부정하는 데 동 원되었다. 영토 밖에 거주함으로써 국가의 정치적 결정 의 여파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66년부터 재외국민 선거가 치러졌다가 1972년 제4공 화국이 출범하면서 폐지되었다. 재외국민의 선거권이 부정될 경우, 해외파병 군인이나 유학생, 상사 주재원, 심지어 외교관들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2년 이 후 선거권이 부정된 것은 재일교포의 선거권 때문이었다. 부재자투표를 위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소요, 복잡한 선거규정으로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유였지만 사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실제로는 일본 내 진보 성향의 교포들이 국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 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결국 재외국민 선거권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일한국인들이 「공직선거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2009년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인정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선거권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적으로 그 보장의 폭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촛 불집회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수립 과 함께 확립된 보통선거제도와 그에 따른 정치적 권리의 식 때문일 것이다. 지방선거까지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우리에게 주어 진 권리를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지방자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 19 법무사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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