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7월호

비, 기생, 백정, 광대, 무당, 승려(중) 등이 ‘놈’ 혹은 ‘년’과 어울려 욕설로 사용되었다. 이는 비단 전통시대의 일만이 아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타파되고 만인 평등을 선언한 헌법이 제정된 뒤에도 특정 직업을 비하해 욕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부엌데기(식모)’, ‘차순이(버스차장)’, ‘양공주’, ‘양갈보’ 처럼 역시 여성형이 대부분이고, ‘넝마주이’, ‘거렁뱅이’, ‘노 가다꾼’, ‘똥퍼(분뇨수거인)’ 같은 남성형도 있었다. 욕설이 금기어가 된 것은 특권층과 그들의 특권적 행위 이외에 차별받는 모든 것은 목소리를 내거나 드러나서는 안 될 것으로 간주됐다는 의미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거 꾸로 피지배계층에 가해진 그 같은 금기를 타파하기 위해 금지된 언어인 욕설로써 지배계층에 대한 저항과 전복을 꿈꾸었다고도 할 수 있다. ‘검사스럽다’, 온당치 못한 권력을 향한 전복적 욕설 그러나 ‘금기의 타파’라는 욕설의 전복적 기능에도 불 구하고 욕설의 사용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단순히 듣 는 상대방을 저주하고 모욕하는 것을 넘어 욕설에 내재된 차별 자체를 수용하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여성과 장애인과 관련된 욕설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염병’이나 ‘지랄’ 같은 말도 장티푸스환자나 간질환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고, ‘후레자식’은 편모자녀를 비하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쪽팔리다’, ‘짱나다’ 등의 속어에는 상대방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없으므로 써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말을 통해 욕설이 주는 전복의 쾌감을 선사받기는 쉽지 않고, 차별 당한 설움과 억울함을 욕설로밖에 풀 수 없을 것 같지만, 그것을 내뱉는 순간 또 다른 차별과 혐오 를 불러오는 아이러니에 빠지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욕설이 주는 전복적 쾌감 도 만끽하면서도 차별과 혐오의 의미는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03년 3월 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의 검찰 인사권 행사와 관련해 평검사들과 토 론을 했던 일이 있다. 공중파 방송에서 생중계한 이날 토론 이후 ‘검사스럽다’ 라는 말이 유행했다. 심지어 이 말은 그해 국립국어원 『신 어』(新語) 자료집에 수록되기까지 했는데, 그 뜻풀이에는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주 장만 되풀이한다”라고 쓰여 있다. 검사를 비하하는 욕설이라니, 한국 사회에서 검사는 최 고의 특권층이 아니던가. 하지만, 국민들은 “검사스럽다” 는 말을 통해 검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상식 을 뒤집고 전복함으로써 ‘검사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 와 의미를 세우고자 했다. 이전에는 사회에 어떠한 해악을 끼치지 않았음에도 단 지 성별, 신분, 직업 등에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무시당하 고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다면, 이제부터는 제아무리 높 은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대상의 경우는 언어적 전복의 대상으로서 무시되고 혐오될 수 있 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로 ‘국개의원’이나 ‘기레기’ 같은 말이 등장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국회의원이나 기자들이 오 히려 ‘권력의 시녀’로서 권력에 아부하고 굴종해 온 것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과 전복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과 비하, 조롱으로 서의 욕설이 아니라, 이처럼 사회적 모범을 보여야 할 집 단과 권력이 부패해 사회적 해악을 끼칠 때, 그들을 향한 통렬한 욕설이야말로 욕설의 긍정적 기능이라 할 것이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욕설에서 모 든 차별받는 존재가 사라지고 욕먹어 마땅한 자들이 그 자리를 채울 때 억울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27 법무사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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