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7월호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왔다. 누구나 태어나면 세 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 고, 때로는 협력하며 때로는 경쟁하며 살아간다. 세상으로부 터 인정받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그런 욕구들에 갇히다 보니 우리의 시선은 줄곧 세상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문득문득 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찾게 된다. 세상만 바라보면서 살아오는 사이에 나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나는 어디에 어떤 모습 으로 있는가. 나이가 제법 들고 나서야 자기 자신을 찾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바라보지 못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 의 내면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먹고사는 데 매달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나 를 돌아보고 나의 내면을 돌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것에 대한 도덕적 주저함도 있곤 했다. 세상을 우선하면 이타주의이고, 나를 우선하면 이기주의라고 생각하는 통념이 있다. 그래서 세상을 등 뒤로 하고 자기에게로 시선을 이동하면 개인의 밀실로 도피하는 것 같아 주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잊힐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삶과 죽음의 한평생 사이에서 결 국 우리가 귀환할 곳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나’로 태어나서 ‘나’로 죽어간다. 이렇게 나를 찾으려는 우리들에게 미셸 푸코가 했던 말년의 강의들은 적지 않은 울 림을 준다. 푸코는 우리가 자기배려를 통해 새로운 윤리적 주체로 재탄생할 것을 주문한 다. 푸코에 따르면 델포이 신탁에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이 쓰인 것은, 신의 견해를 들으 러 온 사람들에게 질문들을 스스로 검토하여 적절한 수의 질문만 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자신이 알고 싶은 것에 대해서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고, 달리 말하면 결코 도를 넘어서지 말 것, 그리고 처신함에 있어서도 지나침이 있어서 는 안 됨을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의미였다. 푸코는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이 자기배려와 연 결된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자기 배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이고, 자기 자신 을 돌보는 행위이며,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행위”다. 요컨대 자신을 망각하지 말고 돌 보며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나’로 태어나 ‘나’로 죽어간다 79 법무사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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