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7월호

오금이저렸던삼풍백화점붕괴사고현장검증 1995년. 당시 필자는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에서 참 여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95년 우리나라에서는 끔찍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바로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다. 5층 건물의백화점건물이순식간에주저앉은이사고는대 한민국정부수립이래최악의참사로기록되고있다.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사망한 사람만 501명이고, 실종자가 6명, 부상자가 937명이나 발생했다. 백화점 전체가 주저앉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여 초. 붕괴의 원인은 백화점 측에서 1층 매장의 면적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다수의중간기둥들을제거한때문이었다. 당시 삼풍백화점은 서울중앙법원청사 동문 맞은편 에있었기때문에백화점을찾았던법원직원이나법조 인들중에피해자가많이발생했다. 필자가 아는 모 변호사도 당일 사고로 두 딸을 잃었 고, 한 부장판사는 붕괴 순간 마침 입구를 빠져나오고 있어서 작은 찰과상만 입고 기적처럼 살아남기도 했다 (이분은 후일 대법관이 되었다). 특히 붕괴시간이 퇴근 무렵이라저녁찬거리등을사기위해백화점을찾았던 법원·검찰청여직원들의피해가적지않았다. 참사이후삼풍백화점의모기업인삼풍건설산업의회 장과상품백화점사장, 뇌물을받고무리한설계변경을승 인한서초구청장등25명이기소되어재판을받았는데,필 자는이재판의항소심에입회사무관으로활동했다. 국민적이목이쏠린사건이라항소심재판부에는늘긴 장이감돌았는데, 당시수사기록과재판기록만해도캐비 닛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재판이었다. 그러다 보 니재판종료시까지법관들은물론이고, 입회사무관들 도심신이괴로울정도로과다한업무에시달려야했다. 하지만, 정작필자를괴롭힌것은과다한업무가아니 라완전히붕괴되지않은채흉물스럽게남아있는백화 점의잔해를헤치고현장검증을해야하는일이었다. 건물의 내부는 이미 폐허처럼 변해 먼지만 가득했고, 불빛하나없는어둠침침한공간을손전등을비춰가며실 시해야하는현장검증은그야말로오금을얼어붙게했다. 501명의사람이아무런잘못도없이갑작스럽게죽음 을맞이한공간. 사고의피해자들이너무도원통하고억 울해저승으로가지못한채자신이파묻힌자리에서원 혼이되어나를살려달라고외치며손을뻗는것만같아 머리가쭈뼛서고다리가후들거렸다.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현장검증을 했는지 모르게 간 신히 현장검증을 마치고 나오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모르게머리끝을만지며현장을빠져나오던기억 이난다. 지금도생각하면당시의현장이생생히떠올라 모골이송연해진다. 지난한재판끝에항소심재판부는이사건의책임을 물어 삼풍건설산업 회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7년 6월, 삼풍백화점 사장에게 징역 7년, 서초구 청장에게징역 10월을선고했다. 순환보직제도에서배운 ‘새옹지마’의지혜 법원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필자가 터득한 나름의 세상 살아가는 지혜랄까, 일종의 철학이 하나 있다. 그 것은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것. 직장이란 보 호막의울타리에있을때나, 사회의허허벌판에내쳐졌 을 때나 마찬가지로 인생사에는 행과 불행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오늘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실망 할 필요도 없고, 만족스럽다고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정도를지키며걷다보면모두가교차하며공평하게지 나가기때문이다. 필자는 현직에 있을 때 인사권자인 상사에게 단 한 번도좋은보직, 이른바 ‘꽃보직’을청한적이없었다. 사 86 법조, 그땐그랬지 문화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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