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7월호

실 ‘꽃보직’이라는 것도 부끄러운 말이다. 하지만 당시 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선호하거나 기피하는 보 직이 있었는데, 필자는 인사이동 때마다 대부분은 한직 (閑職, 그러니까 별로 배울 것도 없으면서 일만 많은 보 직이라고 해두자)으로 밀려나곤 했다. 하지만, 그 한직이란 곳도 근무해 보면 나름대로 배울 점이 있고, 순환보직에 따라 자연스럽게 좋은 보직도 맡 을 수 있었다. 그 경험으로 필자는 ‘인생사 새옹지마’의 이 치를 깨친 것이다. 당시 법원에서 한직으로 여겨지던 보직 중 하나가 재 판부를 보좌해 공판조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는 입회주 사(서기)였다. 타자기 보급 전에는 펜을 먹물에 찍어가며 일일이 조서를 필사해야 했는데, 한창 작성 중에 먹물이 엎질러지거나 번지거나 해서 처음부터 새로 작성하는 일 이 종종 발생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도처 유청산(人間到處 有淸山)’이라 하지 않았던가. 법원 공무원의 순환보직제도에 따라 각급 법 원 간은 2년, 보직 교체는 6개월 단위로 인사이동이 일어 나 입회서기와 같은 한직에 있더라도 또다시 다른 보직으 로 교체가 되니 다들 큰 불만이 없이 적응했던 것 같다. 인사이동이나 보직변경에 따라 전임자에게 업무인 수를 받을 때는 전임자가 처리한 사무에 단점이나 미비 점이 발견되는 일도 있었지만, 되도록이면 전임자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인수인계를 받고 사무의 일관성을 유 지했다. 전임자의 과오를 들춰내 좋을 게 무엇인가. 당시의 이런 문화는 직원들 간의 화합에 도움이 되었 다. 다들 경제적 여유가 없던 때였어도 식당에서 마주치 면 서로가 식비를 내겠다고 나섰고, 바쁜 동료를 위해 숙 직도 바꿔주는 등 인간미가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러한 공무원의 순환보직제도에 대 한 개혁의 목소리도 높다. 잦은 인사이동으로 하나의 업무를 꾸준히 파지 못하다 보니 전문성이 길러지기 어 렵다는 것이다. 이렇듯 순환보직제도에 대한 평가도 시 대마다 다르니 이 또한 ‘새옹지마’라 할 일이 아닌가. 사랑을 좇았던 70년대, 사내커플 이야기 70년대 법원에는 사내커플이 제법 있었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연애하던 시절은 아니었던지라 결혼한다며 청 첩장을 내밀기 전까지는 바로 옆자리 직원조차도 사내연 애를 하고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비밀스러운 경 우가 많았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조용하게 밀린 일을 도와 준다거나 판결문 타자를 다른 직원들보다 빨리 쳐준다거 나 하는 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면서 연애가 시작되어 결 혼까지 이어지곤 했다. 여하튼 청춘남녀가 있는 곳에 사 랑과 연애가 없다면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렇게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내민 이후 대부분의 여성 직원들이 퇴직을 했다는 사실이다. 결혼과 동시에 사직이 전통인가 싶을 정도로 당시 법원에 서 기혼의 여성 직원은 드문 존재였다. “결혼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남녀의 성역할이 강조되던 시절, 학력이나 사회적 지 위를 막론하고 결혼한 여성은 가정주부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요즘 여성들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겠으나 그래도 과도한 혼수나 신혼집 마련 등 조건이나 금전으로 갈등을 빚는 세속적인 면보다는 순수하게 사랑을 좇아 결혼하는 순정이 있었던 것만큼은 그 시절이 좋지 않았나 싶다. <바로잡습니다> 지난 6월호 「법조 그땐 그랬지」 중 “이영섭 대법관(후일 대법원장 역임)”의 “(후일 대법원 장 역임)”은 착오에 의해 잘못 기재되어 삭제하는 것으 로 바로잡습니다. 87 법무사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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