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8월호

일은 아니라고 밝힌 유서에는 이런 사연이 담겨 있었다. “무엇이 저를 이리 힘들게 했을까요. 제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가치는 합리입니다. … 하지만 이 세상의 합리는 저의 합리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 먼저 태어난 자, 가 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입니다. 제 개인적으론 비합 리라 여길 수 있어도 사회에서는 그 비합리가 모범 답안입니다. 저와는 너무도 다른 이 세상에서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 학생의 곁에 누군가가 있어서,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를 말해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이 학생도 자신을 위로해줬던 선배 누나에 대한 고마움을 남겼다. “ ‘힘들 때 전화해, 우리 가까이 살잖아.’ 이 한마디로 전 몇 개월을 버텼습니다. 전화를 한 적은 없지만, 전화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날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힘이 됐습니다. 누나 정말 고마워. 미안해. 결국 전화를 하지 못했네….” 그 선배 누나가 안타까워했던 것은 죽은 후배에게 살아가는 소소한 기쁨을 알려주 지 못했던 것이었다. 후배의 장례식에 다녀온 선배 누나는 이런 글을 올렸다. “… 왜 넌 나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니? 나는 네 삶을 속단할 권리는 없지만 네 가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당장 20가지 정도 댈 수 있어. … 너는 소박한 것에 만족 할 줄 알았고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것을 즐거워했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작은 소 품으로 자기 방을 꾸미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세상에 일본과 제주도 말 고 좋은 관광지가 얼마나 많은데 한 군데라도 더 가보지 그랬니. 세상에 맛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라도 더 먹어보지 그랬니. 아님 그냥 손목 잡고 식당에 데려다가 맛있는 것을 잔뜩 입에 퍼 넣었다면, 너는 어쩌면 안 죽지 않았을까. … 삶에는 고난도 있지만 소소한 기쁨의 존재감도 꽤나 크다고, 그것을 같이 실감해보지 않겠냐고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배 누나는 후배를 보내며 “나는 아픈 친구에게 공허한 위로를 하지 않으 며 먼저 연락을 자주 하며 세상의 즐거운 것들을 많이 알려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자살한 후배에게는 전화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래서 말할 수 있는 사람 이 있다는 것이 그토록 고마운 일이었다. 문화의 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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