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8월호

후배를 떠나보낸 선배는 전화를 걸지 않은 후배를 탓하며 그의 손목을 잡고 삶의 소소한 기쁨들을 알려주지 못했던 일을 안타까워했다. 나에게는 가장 힘들 때 전화 를 걸 누군가가 있을까, 나는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올 때 그것을 받아줄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 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시선을 갖고 그를 바라보 는 사람이라면, 그가 고통스럽더라도 견뎌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하며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종종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 만한 이유가 있음을 같이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삶의 바위를 끝없이 굴려 올려야 하는 고통이 혼자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산꼭 대기를 향해 저마다의 바위를 굴려 올리고 있다. 모든 인간에게서 고통이 피할 수 없 는 것이라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동고(同苦, Mitleid)’의 사상을 통해 ‘고통의 윤리학’을 제시하 고 있다. 선한 사람은 남의 고통을 보면서 자신의 고통처럼 아주 가깝게 느낀다. 그 때 문에 그는 자신의 고통과 남의 고통 사이에 균형을 찾으려 하며, 남의 고통을 완화시 키기 위해 자신의 향유를 단념하고 궁핍을 감수한다. 그 대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이타적인 행위를 한 뒤에 충족을 느낀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흔히 “고통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고통은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 남의 고통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는 생각에서 벗어나 ‘동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한결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어려울 때 다른 이들에게 혼자서는 힘드니까 내 손을 잡아 달라 부탁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려울 때는 내가 그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 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세상을 함께 사는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주는 존재일 수 있어야 하 지 않을까. 왜 인간들은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바로 옆에 있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 존재로부터 찾으려 하는 것일까.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들이 그만큼 절대적이어서 그 런 것인가, 아니면 우리 인간들이 서로에게 믿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일 까. 과연 나는, 손길이 필요한 그 누구에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 동고(同苦)의 사상 83 법무사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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