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참신한 문체가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1792년 정조는 이런 문집을 ‘사(邪)’로 규정하고 배격하였는데, 이것이 후일 ‘문체반정’으로 불렸다. 문체반 정으로 이옥과 함께 고초를 겪은 김려는 아래와 같이 문 장 자체가 아니라 권위에 기대 글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세상에서 간혹 이옥의 글을 비방하여 ‘고문이 아니고 소품일 뿐이다’라고 한다. 나는 가만히 웃으며 말한다. 이 어찌 족히 문장을 말할 만한 자이겠는가. 남의 글을 논하 는 자는 그 고금을 말할 수 있고, 그 대소를 논할 수도 있 겠다. 그러나 만약 “소품일 뿐 고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면, 이는 다만 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믿는 자의 말에 불과 하다.” 이는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에 대해 “학술공간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논의를 법정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며 항의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그 렇다면 학문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일까. 「세계인권선언」에는 학문의 자유가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사상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일부로 이 해되고 있다. 학문의 자유가 사상의 자유나 일반적인 표현 의 자유와 다른 점은 ‘진리 탐구’에 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정의에 따르면 “학문이란 그 내 용과 형식으로 보아 진리의 탐구를 위한 진지하고 계획적 인 모든 활동”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연구와 교수의 자유, 그리고 연구 결과 발 표의 자유와 학문 활동을 위한 집회·결사의 자유로 세분 할 수 있다. 학문의 자유가 처음으로 헌법에 규정된 것은 1849년의 「프랑크푸르트헌법」에서였다. 그 뒤에는 1850년 「프로이 센헌법」 제20조에서 규정되었고, 1919년 「바이마르헌법」 (제142조)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국가의 헌 법이 학문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고, 우리 헌법도 건국헌법 이래 학문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즐거운 사라』 처벌,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했나 그렇지만 다른 자유권과 마찬가지로 학문의 자유 또한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37조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 할 수 있다”에 따른 제한을 받고 있다. 「헌법」 제37조제2항의 법률 유보는 전 국가적이고 사회 전체의 이익에만 한정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공공(公共)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공공 복리는 공공복지라고도 하는데 개인의 개별적 이익과는 달리 다수인 개개의 이익이 잘 조화될 때 성립하는 전체 의 이익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는 어느 한 개인의 이익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다수 개인의 이익에 해당한다면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나치 독일이 전체주의에 입각해 ‘공공의 복리는 개별이 익에 우선한다’고 내세웠지만 우리 헌법의 공공복리 개념 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개인주의적인 이념에 입각 한 개념이다. 헌법 상 위 법률 유보 조항에 따른 자유권의 제한 범주는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 다. 여기서는 학문의 자유가 법률 유보의 세 가지 범주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떤 제한을 받는지 살펴보자. 첫째, 국가적 이익에 따른 제한은 대표적으로 「국가보 안법」을 들 수 있다.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학문의 자유 를 제한하는 것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있을 법한 것 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경상대에서 1989년부터 교양강좌 교재로 사용해온 『한국사회의 이해』가 이적표 현물로 간주돼 압수당하고 집필진들에게 구속영장이 청 구됐다. 또 지난해 1월에는 인터넷 사이트 ‘노동자의 책’ 운 영자인 이진영 씨가 이적표현물을 반포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전자의 사건은 11년의 공방 끝에 2005년 대법 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후자 사건의 이진영 씨도 결 17 법무사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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