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9월호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와 개인의 시각은 그 사회나 개인이 갖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또 여기서 이념적 스펙트럼이란 것은 단지 옳고 그름이나 진 보 또는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도 뛰어넘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법률 유보의 국가적 이유는 긍정하면서 외설죄라는 사회적 이유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 다. 또, 똑같은 명예훼손이라고 해도 『제국의 위안부』의 적 용에는 찬성하면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는 반대하 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여러 사례를 들었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학문 의 자유와 명예훼손 문제가 어느 때보다 뜨겁게 충돌하고 있다. 이 중심에 우익논객 지만원 씨와 재미 복음주의 목 사 김대령 씨가 있다. 이 두 사람은 “5·18은 김대중이 일으 킨 내란사건이고, 시민군은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된 것” 이라는 내용을 인터넷에 게시하고 책으로도 발간했다. 학문의 자유와 관련해 불과 얼마 전까지는 「국가보안 법」을 통한 진보학자의 탄압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 는데, 이런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 5·18을 왜곡한 인터넷 게시물이나 출판물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명예훼손 무혐의 판결이 내려 지고 있다. 2013년 지만원 씨의 재판에서 대법원이 무죄 판단을 한 주된 논거는 이렇다. 글의 목적이 5·18민주유공자들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 고, 5·18민주화운동의 성격을 피고인의 시각 내지 관점에 서 다시 평가한 데 지나지 않으며, 5·18민주화운동은 법 적·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상태이기 때문에 지 씨의 글을 통해 5·18민주유공자나 참가자들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법에서 5·18 왜곡에 대한 처벌이 어렵기 때문에 「5·18유공자법」의 개정이나 새로운 법의 신설로써 이를 규제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두 건의 법안이 발의됐고, 자유한국당에서도 ‘혐오죄’의 신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학계를 포함한 진보진영에서 이에 대한 반박이 나오고 있다. 역사적 사실은 법이 아닌 학문의 영 역에서 규율해야 하며, 사상에 대해서는 보다 좋은 사상 으로 맞서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경합하는 인권, 나의 견해는? 학문·표현의 자유라는 영역에서 과연 어떤 국가, 또는 어떤 사회가 발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강력한 법을 통해 역사의 왜곡을 막고 그에 따른 혐오를 방지하는 사 회가 나은 사회일까, 아니면 단기간의 혼란이 있더라도 학 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주권자 스스로 자정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발전한 사회일까. 1990년대 말 호주인 ‘퇴벤(Fredrick T ·o· ben)’은 학문 연 구를 이유로 국가사회주의 지배 하에서 저질러진 유대인 에 대한 집단학살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했다. 2000년에 퇴벤은 독일 여행 중 경찰에 체포됐 는데 독일 연방대법원은 퇴벤에 대해 모욕죄와 ‘사자에 대 한 추모감정 모독죄’에 대해 상상적 경합관계를 인정하고, 대중선동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977년 미국에서는 신나치 단체가 유대인이 다수 거주 하는 일리노이주의 스코키(Skoki) 마을에서 ‘백인의 표현 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철십자를 갖춘 나치 복장으로 반유대인 시위를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스코키 마을 은 시위금지 명령을 요구하는 청원을 주법원에 제기해 승 소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신나치 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이제 학문의 자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말하고 싶 은 것은 인권 역시 ‘경합’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경합 하는 여러 견해 중 나의 견해가 어떤 위치에 있고, 반대 견 해는 또 어떤 지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 법무사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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