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만연해 있는 현상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지도자였던 칼뱅은 ‘신정정치’를 내걸고 점차 폭력적인 독재를 해나갔다. 칼뱅은 자신의 해석과는 다른 독립적인 성서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다. 칼뱅 자신과 성서 해석을 달리하는 것은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이단이나 국가적인 범죄로 다스렸다. 그런 칼뱅에게 맞서다가 박해를 당한 것이 카스텔리옹이었다. 카스텔리옹은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고, 성서 또한 사람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혹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 대해 너무나 도 뚜렷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오만하게 다른 사람을 멸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오만 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있건 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다면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카스텔리옹은 목숨을 걸고 칼뱅에 맞섰고, 물론 싸움은 권력을 가진 칼뱅의 승리로 끝 났다. 하지만 역사는 카스텔리옹을 ‘폭력에 대항한 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른 것은 다 른 것일 뿐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누가 자신과 다르다고 돌을 던지려 하는가. 그 같은 불관용의 태도는 인간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야만이고 폭력이다. 정치학자 파커 파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과 모순되는 확고한 증 거를 제시하면, 그들은 자기의 신념을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옹호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자신의 확신과 가치에 누가 도전하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 소 우리는 진실에 가까이 가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진리에 다가가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믿음조차도 질문과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거부해서 는 안 된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같은 지구에 살고 있지만, 우리 인간들은 인종, 종교, 이 념, 정견에서부터 성격이나 생김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 들이 모여 사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반목한다면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날 을 지새우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자세 위에서 서로의 차이 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태도다.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견해가 있다 83 법무사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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