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9월호

요한상당액을차용해주면서그담보로 2~9배에달하 는약속어음을받은후이어음을할인해또다른기업 에 같은 수법으로 돈을 빌려주고 어음을 받아 할인하 는 등의 수법으로 7111억 원에 달하는 어음과 6404억 원이라는거액의자금을조성했다. 당시 이 사건으로 공영토건과 일신제강 등이 도산 했다. 은행장 2명과기업체사장등간부 30여명도구 속되었다. 규모가이러하다보니수사관이었던필자도 장장보름을귀가도못한채수사에매달렸다. 당시 장영자·이철희 부부 사기사건은 사회적으로도 초대형 이슈였다. 그만큼 언론의 관심도 지대해 본의 아니게 필자가 고초를 겪은 일이 있었다. 당시 이 사건 의 한 줄기에는 일신제강(주) 주창균 회장과 상업은행 공덕종행장사이에일어난거액의부정대출사건이있 었다. 두사람은서로존경하며, 30년간우정을이어온사 이였다. 그런데일신제강이장영자에게걸려들어어려 움에처하자공행장은주회장의거액대출요청을거 절치 못하고 대출을 해줬다. 그리고 주회장이 가져온 사례금(당시 거액대출 사례금보다 매우 적은 액수)을 거절했으나 주 회장이 억지로 사무실에 팽개치다시피 놔두고가면서결과적으로대가성뇌물을받았다. 그러나 비록 사회적으로 큰 비리를 저지른 두 사람 이었지만, 수사를 하면서 바라본 두 사람은 점잖고 품 성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최대한 인간 적으로대하며조사를했다. 두사람도 “어차피구속은 될 테니 출소 후 다시 만나자”는 말까지 할 정도로 필 자를신뢰했다. 결국그덕분에자백도쉽게받아냈다. 수사를 모두 마치고, 필자는 두 사람이 자백한 자술 서를상관에게보고했다. 그런데다음날 00일보에기 사가 났다. 담당 수사관(필자)에 따르면 부정대출 사 실을 부인하던 두 사람이 엄한 추궁 끝에 상대방을 욕 하며서로에게책임을돌리는치사한행태를보이다가 결국범죄가탄로났다는내용이었다. 소설도 이런 소설이 없었다. 기가 막히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평소에도 언론의 그런 행태로 인해 수사 에 애로를 겪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사는 이미 보도 되었고, 참는 것 외 별다른 수도 없었다. 이 보도로 인 해 필자는 비열한 위선자가 되었고, 그 두 사람의 30 년우정도물거품이되었다. 일본인토지사기사건피해자의눈물과보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 소유였던 토지는 우리 정 부수립후 「귀속재산처리법」에의해모두국가소유로 귀속되었다. 그러나 등기부상 소유자가 “田中日光”와 같이 4자로 되어 있는 경우, 이 토지가 일본인 소유인 지 아니면 창씨 개명한 우리나라 사람 소유인지 헷갈 리는경우가많았다. 그런데 그 토지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소유 토지 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무주공산과도 같아서 토지 사 기단들에게 제1순위의 먹잇감이 되었다. 1981년, 당시 서울남부지청수사과에서계장으로근무하던필자는 한동안이런토지사기단을적발하고수사하는일에매 달려 있었다. 수사 대상은 강화, 김포, 의왕, 안산, 당진 등을무대로하는사기단들이었다. 당시 수사한 사건 중 잊히지 않는 토지사기사건 하 나가 있다. 안성군(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는 임야 등으로 20여만제곱미터정도되는큰토지가있었는 데, 이땅이바로일본인의소유였다. 당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부근 마을 이장이 이 토지를탐내사기사건을공모한다. 구청에서토지대장 과 지적도 등을 담당하는 직원을 꾀어내고, 여기에 몇 86 법조, 그땐그랬지 문화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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