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0월호

만나고 싶었습니다 대한법무사협회 ‘자격자대리인 본인확인제도’ 연구자들 주목! 이 법률 ‘비동의 간음죄’ 도입과 그 입법을 위한 과제 자유 발언대 다운계약서의 유래와 법무사단체에 대한 명예훼손 법무사가 달린다 독거노인 후원 음악회 개최한 바리톤 은성기 법무사 2018년 10월 vol. 616

발행인 최영승 편집인 김성수 편집주간 오일 편집위원 강신기·김미애·김상호·박재승·안신영· 이상진·신혜주·정정훈·주영진·최희수 편집장 임정와 발행처 대한법무사협회 발행일 2018년 10월 5일 통권 제616호 디자인·인쇄 주식회사 더블루랩 표지 일러스트 박혜림 정기간행물 등록 1965년 5월 7일 강남, 라 00102호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651 (논현동, 법무사회관) 전화 02)511-1906~9 팩스 02)546-4362 이메일 <편집부> kabl@hanmail.net 홈페이지 www.kabl.kr 비매품 ※ 본 지에 게재된 글들은 대한법무사협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생에서 상속까지” 우리 인생의 열두 달 이야기 자녀의 출가 새 가정을 일구고, 자녀를 낳고 성실히 일해 온 시간들. 돌아보니 어느새 흰머리 희끗한 장년이 되었습니다. 오늘, 장성한 자녀가 또 하나의 가정을 일구기 위해 떠나갑니다.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는 홀가분함과 자녀의 빈자리로 서운한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우리 법무사는 이 땅의 모든 부모님을 응원합니다. 자녀의 출가를 축하드립니다. 10월

Contents 인터뷰 6 만나고 싶었습니다 대한법무사협회 ‘자격자대리인 본인확인제도’ 연구자들 시사 속 법률 16 차별은 가고 인권이 오다 한글에 스며든 차별과 인권 22 주목! 이 법률 ‘비동의 간음죄’ 도입과 그 입법을 위한 과제 생활 속 법률 26 고마워요, 생활법률 가정법률 4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신고·정정·폐쇄 32 법조기자가 쓴 생활판례 보따리 정직처분 경찰, 소청심사 기각결정 취소소송 (울산지법 2018구합5325) 등 36 새로 시행되는 법령 「의료법」 개정 (2018.9.28. 시행) 등 40 법률고민 상담실 부동산등기, 민사, 가사 분야 99 내가 만난 법무사 내 속의 억울함 풀어준 법무사의 항소이유서

2018년 10월 vol. 616 법무 뉴스 44 업계 핫이슈 법무부 이송 「부동산등기법」 일부개정법률안 주요내용 해설 52 자유 발언대 다운계약서의 유래와 법무사단체에 대한 명예훼손 58 법무사가 달린다 독거노인 후원 음악회 개최한 바리톤 은성기 법무사 62 업계동향 협회장 취임 3개월 전국회원 간담회 개최 등 동정 등록 92 협회는 지금 협회·지방회·법무사 96 법무사 신규등록·등록공고 실무 지식 66 지방세 Q&A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 대한 주택의제 가능성 등 72 법무사 실무광장 ‘그 밖의 재산권’ 등 각종 특수재산권 강제집행 문화의 힘 8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양심 86 법조, 그땐 그랬지 등기필증을 등기권리증으로 알았던 시절 90 책에서 깨친 인생 역사저술가 이승한의 『몽골제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

6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자격사대리인의 직접 대면 확인, 본연의 임무 오늘 참석하신 분들 모두가 오랜 기간 본인확인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신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연 구자로서 이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정 리할 수 있을까요? 배상혁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본인확인제도의 정 확한 개념부터 정리되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등기 의무자와 권리자를 법무사가 직접 현장에서 대면하는 것 을 원칙으로 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방식의 확인수 단, 특히 비대면 본인확인도 허용되는가, 또, 당사자의 대 리인을 확인할 경우에는 그 방법이나 수준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말씀하시는 분들마다 조금씩 다르거든요. 현재 「부동산등기법」 개정안에 자격자대리인이 직접 “대면”해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을 통해 서 대면 확인하는 것이 적법한가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확인서면 관련 판례도 본직이 꼭 대면해야 한다고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직접 대면”이 원칙인가를 명확히 한 후 에 제도를 운영해야 실효성이 담보될 거라고 봅니다. 제 입장은 서면신청과 전자신청 모든 경우에 자격자대 리인이 직접 대면을 해서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효성을 담보할 만한 수단이 없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아무 이득도 없고, 자 격자대리인의 불편만 가중시킬 테니까요. 최재훈 “직접 대면”이 확고한 원칙이고, 이 원칙은 흔들 림이 없어야 해요. 입법이 되어 제도가 시행된다 해도 우 리 스스로 이 원칙을 확고히 하고 실천적 경험을 쌓아나 대한법무사협회 ‘자격자대리인 본인확인제도’ 연구자들 현장에서 직접 당사자 만나기, 거기에 길이 있더라! 부동산등기 절차에서 자격자대리인이 직접 당사자 본인 여부, 매매의사 여부를 확인하는 ‘자격자대리인 본인확인제도’가 포함된 「부동산등기법」이 대법원에서 법무부로 이송되었다. 협회에서는 부동산거래의 안정성과 등기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위 법안의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9.17.(월), 그간 법무사업계에서 ‘자격자대리인 본인확인제도’의 도입을 위해 다양한 연구와 목소리를 내온 법무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도의 필요성부터 입법을 위한 전략, 시행 후 대비해야 할 점 등에 대해 나누어본다. <편집부> 참석•김태영 대한법무사협회 상근부협회장, 정정훈 대한법무사협회 회지편집위원회 위원 배상혁 대한법무사협회 전 정보화위원, 최재훈 대한법무사협회 전 전문위원 진행•김성수 부협회장 / 본지 편집위원장 사진•김흥구 더블루랩 7 법무사 2018년 10월호

가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요. 국민들은 자격사대리인에게 직접 서비스를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가 있고,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집 한 채는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전한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자격사들이 그런 원칙을 잊어버린다면 본인확인제도 의 도입은 직역이기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려울 거예요. 김태영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부동산등기 대리권을 법무사·변호사에게 준 것은 등기가 법률적인 영역이기 때 문이죠. 법률전문가라서 등기에 대한 대리권이 주어졌다면, 법률 전문가가 직접 당사자와 등기의사를 확인하고, 사건을 처 리하는 것은 본질적인 원칙이자 본연의 임무입니다. 법률사건을 맡긴 소비자가 당연하게 그것을 요구할 권 리도 있는 것이고요. 본인확인제도는 당연한 것을 당연 하게 만드는 것이고, 현재로선 등기브로커 등으로 왜곡된 등기시장을 정상화하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합니다. 「부동산등기법」 개정안의 “직접”이라는 표현이 비대면 도 본직이 직접 하면 본인확인으로 인정된다는 식으로 해 석하는 것이 이 법의 입법취지는 아닐 것입니다. 본래의 입법 취지가 잘 반영되는 제도로 운용되고, 실효성 있는 대면확인제도가 마련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정정훈 저는 돈만을 쫓고, 공적 가치를 잃어버렸던 우 리 시대에 대한 본질적인 반성이 이 제도 안에 있다고 봅 니다. 전문자격사들이 직접 의뢰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본연의 의무이고, 이런 기 본적인 의무를 다하는 전문가가 사회적 대우를 받고 수익 도 있어야 정상적인 것이죠. 그런데 근래의 사법파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 법조시장은 전관예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논리가 사 실상 통용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어요. 본인확 인제도는 우리 전문가들이 건강한 사회, 건강한 시장, 건 강한 질서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겁니다. 돈이 얼마나 되나 그런 관점에서가 아니고, 궁극적으 로 우리 자격사들이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공적 역할을 다 함으로써 두터운 사회적 신뢰를 얻어나가는 것이 결국 살 길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편하지 않으면 누가 사건을 맡길까 본인확인제도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어가는 과 정이라는 데 공감합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여전히 제도 도입을 반대하거나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정훈 저는 그 이유가 2가지 정도라고 봐요. 하나는 “물들어 올 때까지만 노를 젓겠다”는 심리인데요, 장년층 법무사들 중에 이런 분들이 의외로 많을 거예요. 사실 이게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저는 선배 법무사님 들께서 지금 막 법무사로서 열심히 살아가려는 후배들의 앞날과 이 나라가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생 각해 대승적 판단을 해주시기를 정말 바랍니다. 두 번째는 지방의 부동산 수요가 서울만큼 크지 않다 는 문제죠. 서울의 아파트값과 지방을 비교한다면 상대가 안 되고, 거래건수도 큰 차이가 납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 확인제도까지 부담을 주면 힘들어진다는 논리죠. 그런데 이건 정말 실제로 현장에서 의뢰인을 만나고 본 인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하는 소리예요. 저는 법무사가 된 이후로 지금까지 현장에서 본인확인을 직접 해왔는데, 법무사가 직접 왔다고 하면 의뢰인도, 중개사도 모두 다 환영하지 싫어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본인확인은 실천의 문제입니다. 해보지 않고는 그 이점 8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을 알 수가 없어요. 막연히 이럴 거다, 저럴 거다 관념적 불 안만 키울 것이 아니고, 막상 해보면 국민들에게도 좋지 만 결국 우리에게 큰 이익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김태영 현재 본인확인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법무사 들은 없을 거예요. 이게 옳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잖아요. 다만, 변호사와 같이 하지 않으면 못한다는 식의 논리 가 많았죠. 변호사가 안하면 법무사만 규제하는 꼴이 되 어 풍선효과가 나타날 거라는 논리였지만, 사실은 사무 장이 나가서 확인하고 오면 편한데, 불편하게 내가 왜 현 장에 나가야 하냐 하기 싫다는 건데, 이번 「부동산등기법」 개정안에서 변호사·법무사의 동시규율이 적용되면서 이 논리는 힘을 잃었죠. 그런데 이번엔 본인확인이 포함된 등기법 개정안에 대 해 대한변협이 논란 끝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 미 「법무사법」과 「변호사법」에 의해 당연히 하도록 되어 있는 본인확인을 새삼스레 등기법에 명문화하려고 하는 건 자신들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의도라는 거죠. 하지만 대법원도 이 논리에는 타당성이 없다고 보고 개 정안을 법무부로 송부했어요. 이제는 사실상 본인확인 도 입에 반대할 논리는 없다고 봅니다. 최재훈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4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일 큰 건 변호사도 같이 해야 한다는 것 인데 이건 “불편하다”는 얘기고, 앞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이미 힘을 잃었죠. 두 번째는 실무적용이 어렵다는 겁니 다. 예를 들어 집단등기는 어떻게 할 거냐, 금융기관 설정 등기는 어떻게 할 거냐, 대법원장이 집을 산다면 직접 만 나러 가야 하냐 등등 실무적인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본인확인을 함으로써 법무사에게 책임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 마지막은 등기시장 일정부분을 변 호사에게 내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변호사들이 대부분 법인화가 되어 있으니 본인확인에 보다 유리하다는 것이죠. 이런 반대논리에 대해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요? 정 법무사님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주기도 하셨는데, 업계 전체의 합의가 있어야 실천에도 힘을 받지 않겠습니 까? 최재훈 사실 불편하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불 가능합니다. 논리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잖아요. 새로운 제도에 따른 불편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 불편하니까 꼭 필요한 것을 못하겠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는 거죠. 예를 정정훈 회지편집위원 배상혁 전 정보화위원 최재훈 전 전문위원 김태영 상근부협회장 9 법무사 2018년 10월호

들어 의사가 불편하니까 수술 집도를 의사가 아닌 사람에 게 맡겨놓는다면 이게 설득의 문제일까요? 불편하다는 것도 현재의 상태에서 그런 것이고요, 제도 가 도입되면 또 거기에 맞춰서 적응이 되고 진화하게 됩니 다. 법무사업계도 변호사업계처럼 법인사무소나 대형화 로 가고, 본직 간의 업무 공조 시스템도 만들고 그렇게 변 화해 가야죠. 지금이 편하다고 변화하지 않고 잘못된 관 행을 고수하겠다면, 법무사 업으로 먹고 살 생각도 하지 말아야죠. 또, 실무적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대다 수가 본인확인이 반드시 당사자 본인만 대면해야 한다는 오해 때문에 생긴 거예요. 본직 본인확인은 본직의 본인 및 대리인 확인입니다. 그러니까 은행의 설정등기나 집단 등기도 대리인을 만나서 확인을 하면 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변호사들이 진입하기 쉬워진다는 것은 맞 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등기브로커를 통해 진입하 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사실 이건 환영할 만한 일이죠. 브로커와 리베이트 등 비정상적인 시장구조가 아 닌 전문성과 질 좋은 법률서비스로 경쟁을 하게 된다면 법무사가 변호사에 비해 경쟁력이 낮다고만 볼 수 없으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결과적으로 변호사나 법무사 모두에 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김태영 불편해서 반대한다는 건, 국가전문자격사가 주 장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지요. 불편하지 않으면 국민들 이 왜 굳이 법률전문가에게 사건을 맡겨야 할까요? 국가전문자격사를 통했을 때 얻는 이득이 있어야 비용 을 감수하고 사건을 맡길 거 아니에요. 더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면 당연히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거고, 실무적용도 거기에 맞춰 해야 하는 겁니다. 책임부담이 높아지기 때문에 못하겠다는 것도 문제가 있는 논리예요. 법률전문가가 그만큼 위험 부담에 대한 책 임을 져주기 때문에 법률전문가에게만 그 대리권을 주는 본인확인은 “직접 대면”이 확고한 원칙이고, 이 원칙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국민들은 자격사대리인에게 직접 서비스를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가 있고, 우리에게는 안전한 부동산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10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것이고, 비용도 지불하는 것이죠. 책임부담을 지지 않겠다 는 건 결국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전문자격사제도가 자격사들의 복지와 편의를 위해 만 들어진 제도가 아니잖아요? 국가가 전문자격사들에게 그 시장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준 것은 그만큼 공적으로 부 여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정훈 이런 논리도 있어요. 본인확인을 부실하게 해서 발생한 사고의 건수가 얼마냐, 사고가 적은데 그런 번거로 운 절차를 국민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법원이 그 런 질문을 많이 했죠. 사실 정부도 비슷한 입장일 겁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이 사고 건수 문제일까요? 부동 산과 관련한 사고는 피해를 입은 그 당사자에게는 전 재 산을 잃는 아픔이고, 그 파장도 비단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과 친지에게까지 미칠 수 있는 것인데, 이걸 희소성이 나 건수로만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저는 최근 법률 절차의 IT화가 그리 반갑지 않은 사람인 데, 인간의 문제를 생명이 없는 기계나 사물을 다루듯 효 율성이나 합리성만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기술주의나 공 리주의적 사고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대법원이나 정부가 그런 관점에서 질문을 할 때, 우리는 그런 질문 자체야말 로 불편하고 잘못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배상혁 그런데 그 불편함이란 사실 우리가 불편한 것이 지 당사자는 불편할 게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은행에서 법무사에게 몇 시까지 오세요, 하면 그 시간에 안 갈 법무 사가 있을까요? 그렇게 고지를 했는데도 시간에 자꾸 늦 는다면 다른 법무사랑 계약을 하겠죠. 모든 비즈니스에서 권력자는 고객을 끌고 오는 자, 즉 영업 행위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를 법률사무소에 대입해 본다면, 본인확인제도는 강제적으로라도 고객을 만날 수 있게 해주어 본직이 직접 당사자에게 영업할 수 있는 기 회를 제공하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당사자가 만족하면 다른 고객도 소개해 주 겠죠. 그렇게 조금씩 거래처를 쌓아 가면 업무 전문성도 유지되고, 사무소 운영도 원활해질 겁니다. 그런데 현재는 이런 기회를 바보같이 직원이나 사무장 에게 주고 있어요. 이들이 현장에서 당사자를 만나 관계 를 형성하고, 고객도 소개받으면서 거래처를 쌓고 영업 사 무장이 되어 변호사업계로 이직해 가는 겁니다. 본인확인제도는 본직이 열심히만 하면 직원에게 의존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다양한 질문에 대한 입법전략 매뉴얼 만들어야 대법원이 「부동산등기법」을 마련해 법무부로 이송시 킨 것은 대법원도 본인확인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의미겠지요. 이제 공은 법무부와 국회로 넘어갔는데, 이 시 점에서 입법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요? 김태영 일단 법무부로 송부되었으니 법무부가 본인확 인제도 도입 취지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인식할 수 있 도록 안내하고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지금 대한변협에서 공식적으로 반대의견을 냈기 때문에 변호 사업계가 본인확인제도의 필요성과 취지에 동의할 수 있 도록 설득하는 것이 우선적인 것 같습니다. 변호사도 부동산등기시장에 진입한 이상, 부동산거래 의 안정성과 등기의 공신력 제고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겠 다는 것에 반대할 명분이 적죠. 다만, 본인확인제도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인데, 본인 확인제도의 유의미성과 법률전문가로서 등기시장 정상 화를 위한 소명이 있다는 것을 변호사들에게도 적극적으 로 설득해 내야 합니다. 정정훈 제가 한 마디 첨언할게요. 대한변협 지도부가 등기시장에 진입하는 젊은 로스쿨 변호사들을 생각한다 11 법무사 2018년 10월호

면, 본인확인제도에 적극 찬성해야 해요. 본인확인제도를 통해 젊은 변호사들이 현장에서 직접 당사자를 만날 수 있게 해주면, 당사자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스스로 살 아갈 길을 열어주는 겁니다. 본인확인제도는 크게 영업능력이 없어도 강제로 당사 자를 만나 관계를 쌓을 기회를 주기 때문에 젊은 변호사 들이 영업 사무장을 쓰지 않아도 거래처의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변호사 수가 많아져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젊은 변호사들이 현장에 나가 당사자를 직접 만나면 국민 들은 변호사에게 직접 상담을 받아 위험을 예방할 수 있 어서 좋고, 변호사들은 영업을 할 수 있으니 좋고, 더 나아 가 영업 사무장들의 입지가 좁아져 변호사업계의 정상화 에도 그만큼 기여하게 될 거예요. 모두가 윈윈 하는 거죠. 배상혁 저는 아직도 남아 있는 반대론에 대한 설득 매 뉴얼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본인확인제도에 대한 여 러 가지 이해부족이나 오해들, 일반국민부터 자격사대리 인, 대법원, 법무부, 국회의원들까지 제기될 수 다양한 반 대 이유들을 나열해 보고 그에 대한 반론과 설명을 기록 해 놓는 거죠. 이런 매뉴얼 작업이 미리 되어 있어야 앞으로 입법 과 정에서 부딪힐 여러 반대론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적극적 인 대응이 가능할 수 있어요. 최재훈 저도 매뉴얼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적극 동 의합니다. 본인확인 관련해 법무부가 협회에 전화로 의견 을 구한다거나, 국회의원을 찾아가서 설명을 한다 해도 길 어야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은 2~3분 정도일 겁니다. 짧고 맹쾌한,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표어같은 답변을 원하 겠죠. 길게 얘기하면 그만큼 궁색하다고 느낄 뿐이거든요. 결국 철저하게 준비된 대응 매뉴얼이 필요해요. 마치 면 접시험 준비처럼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도 록 말이죠. 그러려면 우리끼리 계속 모의면접을 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이밖에도 집단등기, 금융기관등기 등 다양한 유형의 등 기에서도 어려움 없이 적용시킬 방법론에 대한 실무적 정 리가 필요하고, ‘국민적 편의성’에 대한 논리도 다양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법 시행 후, 스티커와는 다른 확인서면 필요해 자, 이제는 입법 이후를 생각해 보죠. 입법이 되었다 해도 마치 현재의 확인서면처럼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으 면 제도가 형해화 될 수 있잖아요. 어떤 대비책이 필요하 다고 보시나요? 정정훈 저는 시대가 우리 편이라고 봐요. 입법에서 많은 걸 담지 못했다 해도 국민의식이 성장하면서 정보공개가 투명해지고, 준법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일단 입법이 되 면 점차적으로 제도적 보완이 될 거라고 봅니다. 변호사업계가 입법을 반대하는 것이 뭐냐면, 「부동산 등기법」에 명시되면 이걸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거든 요. 변호사들이 아무래도 사회적 특권을 많이 누리고 있 기 때문에 그만큼 국민적 감시에 대한 두려움도 큽니다. 일단 입법이 된다면, 위법에 대한 부담감이 이전 시대와 는 다를 거예요. 사전규제가 있으면 좋지만, 없다 해도 사 후규제에 대한 방안들이 생겨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 하고 있어요. 김태영 현재 등기시장의 왜곡된 행태에 비춰 보면 본인 확인제 역시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 시도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면 형 해화 될 가능성이 충분하죠.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해요. 일단 입법이 되고 우리 노력으로 조금만 탄력을 받는다 면, 변호사들도 기본적인 준법의식이 있기 때문에 사전규 제 장치만 좀 만들어 놓으면 잘 될 거라고 봐요. 12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일반론적인 말씀을 잘 해주셨는데, 조금 더 들어가 보죠. 구체적으로 실효성 제고 방안으로 그간 고무방과 스티커 활용이 제안되어 있는데, 여기 그 제안자 두 분이 나오셨으니 각 방안에 대한 설명을 들어볼까요? 정정훈 저는 개업 이후 13년간 98% 현장에 직접 다녔 어요. 그런 경험으로 보면 본인확인제도는 실천하는 사람 이 거의 시장을 독식하게 될 거라고 봐요. 현장에 나가면 당사자나 중개사가 정말 좋아하고, 법무사가 직접 오지 않 는 법무사 사무소하고는 거래를 안 하려고 해요. 그래서 본인확인제도 논의가 시작될 때 제 경험에 비춰 현 장에서 편리하게 활용이 가능한 고무방안을 제안했어요. 계 약서에 직접 고무방을 찍어서 등기권리자와 의무자를 사인 하게 하고, 법무사가 확인했다는 사인을 하게 하는 방식이죠. 이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본 것은 계약서가 등기권리증 에 편철되기 때문에 당사자가 집으로 가지고 가서 언제든 지 꺼내보면서 안심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고, 거래에 대한 안전성과 신뢰성을 가지게 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였죠. 배상혁 본인확인 방안에 대한 그간의 스토리가 있어요. 2016년 협회 정기총회에서 「법무사의 본인확인 등의 절 차에 관한 규정」이 통과되었는데, 당시 양식이 ‘위임인 본 인여부 등 확인서’예요. 일본의 것을 차용해 한 장 가득 여러 항목을 기입토록 했는데, 정작 본직이 직접 작성했는지, 자격자대리인이 당 사자를 대면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게다가 확인서는 사무소에 보관하고 등기소에 제출하지 않는 거였죠. 저는 당시에 이 양식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고, 대법원 도 법무사가 작성한 건지 어떻게 확인하느냐는 입장이었 죠. 이후 매매계약서에 고무방을 찍어 날인하자는 정정훈 법무사의 간편한 확인방식이 제안되었습니다. 저는 고무방 방식이 확인서 양식에 비해 ▵업무 부담이 간소화되고, ▵원인서면에 부기되기 때문에 등기소에 제 출되고, ▵등기필정보와 합철되어 당사자에게 교부되며, ▵당사자의 필적을 받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획기적인 아 이디어이고, 발상의 전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법무사가 원인서면에 확인문구를 기 대한변협 지도부가 등기시장에 진입하는 젊은 변호사들을 생각한다면, 본인확인제도에 적극 찬성해야 해요. 크게 영업능력이 없어도 강제로 당사자를 만나 관계를 쌓을 기회를 주기 때문에 젊은 변호사들이 영업 사무장을 쓰지 않아도 거래처의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13 법무사 2018년 10월호

재할 권한이 있느냐, 품격이 떨어진다 등의 반론도 있었죠. 그래서 제가 스티커 안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스티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서가 되니 원인서면에 부착 해도 권한 문제가 제기될 이유가 없었고, 전문디자이너에게 의뢰해 등기필정보 스티커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품격도 높 였죠. 내용적으로도 보다 업그레이드 해서 ▵당사자의 전화 번호를 적어 법무사의 당사자 확인 여부를 추적할 수 있게 했고, ▵본인확인을 하지 않을 경우 등기사고 발생 시 협회 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어 법무사와 당사자 모 두 본인확인에 대한 심리적 강제를 느끼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고무방이나 스티커 양식은 협회의 본인확인 양 식을 대체하는 양식을 구상한 것이고, 이제 「부동산등기 법」 시행 이후에는 다르게 적용이 되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입법 과정 중에 있으니 선도적으로 특정 양식을 만들어 자체 시행해 보면 어떨까 해요. 그러 면서 대법원과 국회에 어필하고, 규칙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전자적 방식, 대법원 전자신분증 앱 활용하자 전자적 방식으로 본인확인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 도 꾸준히 연구되었습니다. 그 분야는 최재훈 법무사님이 많이 연구하신 걸로 아는데, 전자적 방식의 실효성 확보 방안에 대해 설명해 주실래요? 최재훈 일단 전자적 방법에 대한 오해부터 풀고 갈게 요. 전자적 방식의 도입은 자격자대리인에 의한 본인확인 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론이지, 본인확인에 대한 방법론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전자적 방법만이 유일한 본인확인 방 법이라거나, 자격자의 판단 작용을 대체하자거나, 등기의 사 확인을 배제하자는 것도 아니죠. ‘자격자대리인이 직 접 본인을 대면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사전에 쉽게 검증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인 거고, `본인확인`에 대한 방법 론은 아니라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실효성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봤는 데요, 당사자의 지문 등 생체정보 이용은 제도화가 어렵 기 때문에 당사자의 생체 정보를 대신할 정보로 신분증 실물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신분증 실물과 자격사대리인 이 함께 있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면 실효성 확보에 매우 효과를 낼 겁니다. 마침 다행스럽게 대법원이 등기소 출입증을 전자화해 서 전자신분증 앱을 만들고 있어요. 이 자격자용 앱으로 신분증 실물을 촬영해 등기소에 전자적으로 제출하도록 만 등기규칙이든 예규든 마련해 놓는다면, 실효성 확보라 는 큰 고민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거죠. 본인확인에서 신분증 사본의 제출은 이미 익숙해 거부 감 없고요, 복사하거나 스캔하는 방식보다 앱으로 촬영하 여 제출하니 간편하고 개인정보 보호에도 우수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전자적 방식으로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생각 입니다. 배상혁 그런데 최 법무사님 얘기에서 짚어볼 것은, 서 면 신청할 때 본인확인정보를 어떤 양식으로 할 거냐가 기본 베이스로서 먼저 제대로 설계된 다음에 전자적 방식 을 얘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면이 먼저고 그 다음으로 금융기관에서 할 땐 어떻게 할 거냐, 집단등기일 때는 어떻게 할 거냐 하는 예외적인 것들을 설정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전자등기를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가 맞는 순서라는 거죠. 그리고 최 법무사님 말씀처럼 법무사만 쓰는 핸드폰 앱 에 당사자의 신분증을 촬영해서 제출하면 본인확인이 된 것이냐고 한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 법무사의 지문을 등록해야만 로그인이 되도 록 하는 방식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법무사 앱을 14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깐 핸드폰을 그냥 사무원을 줘버릴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최재훈 제가 서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건 기 본 베이스니까 굳이 말씀을 안 드린 거고, 제가 설명한 전 자적 방식은 단지 전자신청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에요. 서면신청에서도 신분증 사본 제출만은 전자적으로 촬 영한 걸 제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서면이 든 전자든 통제가 가능합니다. 물론 이게 완벽하지는 않 습니다. 이것만 유일한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여기에 보 완점을 추가해서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어가자는 거죠.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차원에서 김태영 상근부협회장님께서 「부동산등기 법」의 통과를 위한 집행부의 노력과 시행 이후의 대책 등 에 대해 총론적으로 이야기해주시는 것으로 오늘 좌담 인 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현재 「부동산등기법」 개정안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에 서 검토 중에 있는 단계입니다. 법무부를 통해 정부입법 으로 발의가 된다면 국회를 통과해 입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입법 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다각적으 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반대의견을 낸 대한변협의 일부 부정적인 변호사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 고, 법안 통과가 변호사들을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명 의대여 방지와 자격사 중심의 사무소 정착을 통해 변호사 들에게도 실익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입법과 함께 이를 제도적으로 실질 화 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에요. 본인확인제도는 서면 신청뿐 아니라 전자등기에서도 반드시 구현되어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공인인증서가 폐지되는 시점에 ‘등기용 인증서’도 같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특히 이번 등기법 개정안 제28조의2 제2항에서 ‘제1항 에 따른 위임인 확인의 방법, 등기소에 제공하여야 하는 첨부정보와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 규칙으로 정한 다.’고 하였기 때문에 본인확인을 실질화 할 수 있는 규칙 제정이 중요합니다. 이에 협회에서는 법제연구소만이 아니라 정보화위원 회를 중심으로 전자등기에서의 본인확인 과정도 구현될 수 있는 ‘첨부정보와 그 밖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연구하 고 대법원과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고자 합니다. 현재 「부동산등기법」 개정안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에서 검토 중에 있는 단계입니다. 법무부를 통해 정부입법으로 발의가 된다면 국회를 통과해 입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입법 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15 법무사 2018년 10월호

한글이 가진 평등사상,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임미리 한신대학교 학술원 전임연구원 한글에 스며든 차별과 인권 16 시사 속 법률 차별은 가고 인권이 오다

한글에 대한 자부심과 사대주의의 공존 10월 9일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한글날이다. 1991년 공휴일에서 제외됐다가 23년 만인 2012년, 국회 가 ‘한글날 공휴일 지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전 세계적으로 문자 창제일을 국경일 로 지정해 기념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오랜 시간 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발전한 한자나 로마자와는 달리 한글은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분 명한 동기와 목적을 밝히고 창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한글에 대한 자부심은 익히 잘 알려져 있 다.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한글을 꼽고 있으며, 의류나 각종 포장재의 문양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2009년에는 인도네시아 소수부족인 찌아찌아족 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도입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 면서 ‘한글 수출’에 대한 기대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찌아찌아족의 한글 공인은 결과적으로는 실패 로 끝났다. 찌아찌아어는 음절 간의 대립이 있어 한글로 표기하기에는 적당치 않을뿐더러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일방적으로 강행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한글에 대한 생각은 이중적이다. 자부심과 동시에 특히 영어 등 외 국어에 대한 사대주의도 갖고 있다. 사진은 2016.10.9. 570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문화연대 '우리말 가꿈이' 대학생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 서 피켓을 들고서 바른 우리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한글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 안에 담긴 평등사상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평등한 문자생활, 평등한 사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글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17 법무사 2018년 10월호

우리말에 스며든 서울중심주의, 지역차별적 표현은 매우 심각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이부망천(서울 목동에서 잘 살다가 이혼하면 부천으 로 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진은 2018.6.21. ‘이부망천’ 발언을 한 의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인단 모 집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정부나 찌아찌아족이 거주하는 바우바우시 와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고 알려졌다. 거기에 더해 한글보 다는 오히려 로마자 사용이 국제환경에 적합하기 때문에 한글의 공식문자 채택은 실용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는 지적도 있었다. 찌아찌아족 한글보급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한글에 대 한 자부심은 문화제국주의로까지 나타났지만 한국인들 의 자국어나 문자에 대한 생각은 매우 이중적이고 상대 적이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지 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국의 언어에 대한 열등감, 또는 일 종의 사대주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73년, 한글날을 하루 앞둔 10월 8일, 전국 각계각층에서 국어순화운동의 깃발을 올 렸다. 대한어머니회, 한글협회, 새싹회 등이 “국어의 사대 주의를 추방하자”는 목표로 외래어, 그중에서도 특히 한 글에 숨어든 한자어와 일본말을 추방하고자 했다. 45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건설과 인쇄술 같은 전 문영역뿐 아니라 일상 언어에도 일본어가 뿌리 깊게 박혔 을 뿐 아니라 한자를 써야 양반으로 치부됐던 전통시대의 유산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맙습니다’보다는 ‘감사 합니다’, 타인의 아버지를 ‘춘부장’이나 ‘춘당’이라고 해야 더 예의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표준어,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서울말? 국어순화운동은 ‘우리말쓰기운동’으로 이름이 바뀌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 다. 경제력의 성장과 함께 자국 언어에 대한 자부심도 높 아졌지만 여전히 영어 같은 서구 언어에 대한 사대가 계 18 시사 속 법률 차별은 가고 인권이 오다

속되고 있다. 지난 세기 추방의 대상이 한자어나 일본어였다면 21세기 에는 서구어, 특히 영어가 됐을 뿐이다. ‘요리사’ 대신 ‘쉐프’가, ‘요리법’ 대신 ‘레시피’가 공식용어처럼 쓰이고, 디테일, 핫한 뉴스, 팩트 체크 등이 TV 화면을 도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의 언어가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와 일치해야 한다 는 생각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형성된 근대 국민국가의 산 물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했듯 민족은 ‘상상의 공동 체’에 불과하고 대혁명 이전에 단일한 언어를 쓰는 국민국 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1066년 노르만인이 잉글랜드 섬을 정복한 이후 수 세 기에 걸쳐 영국의 궁정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영어 가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세력을 얻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 영국이 세계 각 곳에 식민지를 넓혀가면서부 터다. 식민지를 대상으로 국가 차원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 를 공고히 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서 영어가 영국인임을 증 명하는 단일한 언어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언어가 갖는 이 같은 권력관계는 단지 국가 간에서만 나 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어 사이에 일 종의 위계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정의하고 있 다. 적어도 언어의 측면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 그리고 서 울사람들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준어가 아닌 말로는 비어나 속어가 있고, 지역적으로 는 방언, 즉 사투리가 존재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에 비해 비서울권 거주자들을 언어에서도 홀대하는 셈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사투리 사이에도 위계가 있다. 한때 경상도 사투리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경상도 출신들이 정계와 재계를 포함해 사회 각 부문의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던 시절이다. 거꾸로 전라도 출신일 경우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 고향 사투리를 쓰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정치권 력의 향배가 지역에 대한 차별을 낳으면서 그 지역의 언 어까지 배척한 셈이다. 이렇듯 언어에는 권력관계가 담겨 있지만, 거꾸로 언어 를 통해 권력 관계를 관철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언어를 통해 차별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부양천·삼릉오계, 지역 차별적 언어 만연 먼저 나라 안부터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 그 지역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 가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파리가 곧 프랑스이듯이, 서울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As Paris was for France, Seoul was not simply Korea’s largest town; it was Korea.)” 주한 미 대사관 문관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 이 1960년에 한 말이다. 서울은 600년 도읍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외국인의 이 같은 평가는 단지 정부 수 립 이후의 일만은 아니다. 한국에 대한 기행문을 남긴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1894년경 서울에 대해 “모 든 한국인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 어느 계급일지라도 서 울에 사는 사람들은 단 몇 주라도 서울을 떠나 살기를 원 치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서울은 오직 그 속에서만 살아 갈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가히 ‘서울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경우 상황이 전혀 다르다. ‘경상도 보리문딩이(보리문디)’, ‘전라도 깽깽이’, ‘강원도 감자바 우’, ‘멍청도(충청도) 핫바지’ 같은 말은 오히려 애교에 속 한다. 인종차별에 가까운 말들이 특정지역 또는 그 지역 사람들을 비하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19 법무사 2018년 10월호

그중에서도 특히 정도가 심한 것은 호남에 대한 차별적 표현들이다. 이명박 정권 이후 영남에 대한 차별적 표현들 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지만 호남 차별에 대한 반작용이라 고 할 수 있고, 그 수도 호남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 당 대변인이 “서울 목동에서 잘 살다가 이혼하면 부천으 로 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는 뜻으로 ‘이부망천’이라 는 표현을 했다가 해당 지역의 표를 대거 갉아먹은 일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서울 근교의 위성도시들을 ‘서울식민지’로, 김포시를 전원일기에 등장 한 ‘양촌리’로, 수원을 미국 뉴올리언스에 빗대 ‘뉴올리언 스수원’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울 안에서도 차별이 있다. ‘삼릉오계’라는 말이 있다. 서울 강북지역의 정릉동, 공릉동, 태릉, 그리고 석계, 월계 동, 상계동·중계동·하계동을 가리키는 말인데 서울 동북 부지역을 싸잡아 비하하는 말로도 쓰인다. 9월 중순 청와대의 정책실장 장하성이 “모든 국민이 강 남에 가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제가 강남에 살아 드리 는 말씀”이라고 했지만 서울의 강남을 제외하고는 한국 내 모든 지역이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한글 속 순혈주의 극복해야 국내에서 서울 아닌 다른 지역이 이런 정도이니 외국인 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아프리카 가 나 출신의 방송인 샘 오취리(Okyere Samuel)가 어느 방 송에서 자신을 ‘흑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한 일이 있다. ‘백형’이나 ‘황형’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도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다는 데서 ‘흑형’이라는 말에 담 긴 차별적 어감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유색인종이나 경제적으로 낙후한 국가의 사람 한글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 안에 담긴 평등사상 때문이다. 한글의 세계화 도모를 위해서는 한글의 평등사상을 우리 언어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 사진은 2016.10.2.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전국 최대 규모 다문화축제 ‘2016 맘프’ 중 ‘다문화 퍼레이드’ 장면. <사진 = 연합뉴스> 20 시사 속 법률 차별은 가고 인권이 오다

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종차별적 호칭이 날이 갈수록 심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전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모두 147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약 3%가 외국인인 것이다. 이제 단일민족국가는 허상이라고 봐야 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말과 문화가 다른 수많은 이주노동자, 유학생, 국 제결혼을 한 이주여성들이 한국인들과 뒤섞여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한국인들은 단 일민족국가의 신화에 갇혀 외국인들을 차별하고 배제하 고 있다. 외국인들에 대한 멸칭은 그 차별과 배제가 어느 정도로 혹독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흑인을 비하하는 말은 ‘깜둥이’, ‘깜상’, ‘깜시’, ‘니그로’처 럼 나날이 그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동남아 불체자’라는 말은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는 모두 불법체류자로 치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베트남전쟁 때 키가 작고 피부가 검은 편인 동남아인을 부정적으로 통칭했던 ‘베트 콩’은 여전히 베트남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며, 베트남 여자를 한국 남성의 성적 노리개 정도로 낮추어 보는 ‘꽁까이’ 같은 단어도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뿐만이 아니다. 같은 민족이라도 중국동포는 ‘조 선족’이나 ‘연변처녀’ 등으로, 북한 출신 주민은 ‘탈북자’로 부르며 차별하고 있다. 탈북자를 ‘새터민’으로 고쳐 부르지 만 구별 자체가 당사자들에게는 차별로 인식될 수 있다. 심지어 빙상선수 안현수를 러시아에 귀화했다 하여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부르는 일에서는 한국인들의 단일민족 신화가 단지 혈통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방인에 대한 멸칭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바 로 ‘혼혈’에 대해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을 경우 이방인 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이들에 대한 멸시적인 호칭은 흑인 이나 일반적인 동남아시아계보다 심하다. 혼혈이라는 말 자체도 ‘순혈’과 대비되는 차별적 용어이 지만 그 밖에도 ‘튀기’, ‘잡종’, ‘짬뽕’과 같이 지독한 혐오를 내포한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또 섞인 혈통이 무엇인지 를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도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자녀를 ‘라이따이한’, 미국 남성과 한국 여성은 ‘아메라시안’, 한국과 동남아인은 ‘코 시안’,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은 ‘코피안·코피노’라고 부 르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한국계 국제결혼 2세를 지칭하는 말로는 ‘하프 코리안’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주민이 늘어나고 국제결혼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미국에서 독일계 미국인(GermanAmerican), 아시아계 미국인(Asian-American)이라고 하 는 것과는 맥락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단순히 조상의 혈 통을 밝히는 것이라면 한국에서는 순혈이 아닌 혼혈들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고 그러한 구분은 당사자들 에게 차별로 작용하고 있다. 왜 굳이 구분해 불러야 할까? 왜 굳이 구분해야 할까. 아니, 왜 굳이 구분해 불러야 할 까. 단일민족신화가 만들어낸 순혈주의에 대한 갈망, 그리 고 그러한 신화와 갈망이 깨지는 데 대한 공포가 작용했 을 것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신념체계가 사회변화의 속도 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 다. 여기에 더해 극단적 양극화가 초래한 불안한 생활이 나 아닌 다른 모두에 대한 배제와 혐오를 불러왔고, 그것 이 약자들에 대한 차별로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한글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 안에 담긴 평등사상 때 문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평등한 문자생 활, 더 나아가 평등한 사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글 이 갖는 과학성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572회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세계화를 도모하기보다는 한글의 창제원리에 담긴 ‘평등사상’을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실천 하는 것이 더욱 값진 일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1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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