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0월호

속되고 있다. 지난 세기 추방의 대상이 한자어나 일본어였다면 21세기 에는 서구어, 특히 영어가 됐을 뿐이다. ‘요리사’ 대신 ‘쉐프’가, ‘요리법’ 대신 ‘레시피’가 공식용어처럼 쓰이고, 디테일, 핫한 뉴스, 팩트 체크 등이 TV 화면을 도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의 언어가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와 일치해야 한다 는 생각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형성된 근대 국민국가의 산 물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했듯 민족은 ‘상상의 공동 체’에 불과하고 대혁명 이전에 단일한 언어를 쓰는 국민국 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1066년 노르만인이 잉글랜드 섬을 정복한 이후 수 세 기에 걸쳐 영국의 궁정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영어 가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세력을 얻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 영국이 세계 각 곳에 식민지를 넓혀가면서부 터다. 식민지를 대상으로 국가 차원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 를 공고히 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서 영어가 영국인임을 증 명하는 단일한 언어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언어가 갖는 이 같은 권력관계는 단지 국가 간에서만 나 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어 사이에 일 종의 위계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정의하고 있 다. 적어도 언어의 측면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 그리고 서 울사람들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준어가 아닌 말로는 비어나 속어가 있고, 지역적으로 는 방언, 즉 사투리가 존재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에 비해 비서울권 거주자들을 언어에서도 홀대하는 셈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사투리 사이에도 위계가 있다. 한때 경상도 사투리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경상도 출신들이 정계와 재계를 포함해 사회 각 부문의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던 시절이다. 거꾸로 전라도 출신일 경우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 고향 사투리를 쓰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정치권 력의 향배가 지역에 대한 차별을 낳으면서 그 지역의 언 어까지 배척한 셈이다. 이렇듯 언어에는 권력관계가 담겨 있지만, 거꾸로 언어 를 통해 권력 관계를 관철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언어를 통해 차별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부양천·삼릉오계, 지역 차별적 언어 만연 먼저 나라 안부터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 그 지역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 가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파리가 곧 프랑스이듯이, 서울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As Paris was for France, Seoul was not simply Korea’s largest town; it was Korea.)” 주한 미 대사관 문관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 이 1960년에 한 말이다. 서울은 600년 도읍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외국인의 이 같은 평가는 단지 정부 수 립 이후의 일만은 아니다. 한국에 대한 기행문을 남긴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1894년경 서울에 대해 “모 든 한국인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 어느 계급일지라도 서 울에 사는 사람들은 단 몇 주라도 서울을 떠나 살기를 원 치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서울은 오직 그 속에서만 살아 갈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가히 ‘서울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경우 상황이 전혀 다르다. ‘경상도 보리문딩이(보리문디)’, ‘전라도 깽깽이’, ‘강원도 감자바 우’, ‘멍청도(충청도) 핫바지’ 같은 말은 오히려 애교에 속 한다. 인종차별에 가까운 말들이 특정지역 또는 그 지역 사람들을 비하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19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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