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종차별적 호칭이 날이 갈수록 심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전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모두 147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약 3%가 외국인인 것이다. 이제 단일민족국가는 허상이라고 봐야 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말과 문화가 다른 수많은 이주노동자, 유학생, 국 제결혼을 한 이주여성들이 한국인들과 뒤섞여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한국인들은 단 일민족국가의 신화에 갇혀 외국인들을 차별하고 배제하 고 있다. 외국인들에 대한 멸칭은 그 차별과 배제가 어느 정도로 혹독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흑인을 비하하는 말은 ‘깜둥이’, ‘깜상’, ‘깜시’, ‘니그로’처 럼 나날이 그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동남아 불체자’라는 말은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는 모두 불법체류자로 치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베트남전쟁 때 키가 작고 피부가 검은 편인 동남아인을 부정적으로 통칭했던 ‘베트 콩’은 여전히 베트남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며, 베트남 여자를 한국 남성의 성적 노리개 정도로 낮추어 보는 ‘꽁까이’ 같은 단어도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뿐만이 아니다. 같은 민족이라도 중국동포는 ‘조 선족’이나 ‘연변처녀’ 등으로, 북한 출신 주민은 ‘탈북자’로 부르며 차별하고 있다. 탈북자를 ‘새터민’으로 고쳐 부르지 만 구별 자체가 당사자들에게는 차별로 인식될 수 있다. 심지어 빙상선수 안현수를 러시아에 귀화했다 하여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부르는 일에서는 한국인들의 단일민족 신화가 단지 혈통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방인에 대한 멸칭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바 로 ‘혼혈’에 대해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을 경우 이방인 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이들에 대한 멸시적인 호칭은 흑인 이나 일반적인 동남아시아계보다 심하다. 혼혈이라는 말 자체도 ‘순혈’과 대비되는 차별적 용어이 지만 그 밖에도 ‘튀기’, ‘잡종’, ‘짬뽕’과 같이 지독한 혐오를 내포한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또 섞인 혈통이 무엇인지 를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도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자녀를 ‘라이따이한’, 미국 남성과 한국 여성은 ‘아메라시안’, 한국과 동남아인은 ‘코 시안’,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은 ‘코피안·코피노’라고 부 르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한국계 국제결혼 2세를 지칭하는 말로는 ‘하프 코리안’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주민이 늘어나고 국제결혼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미국에서 독일계 미국인(GermanAmerican), 아시아계 미국인(Asian-American)이라고 하 는 것과는 맥락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단순히 조상의 혈 통을 밝히는 것이라면 한국에서는 순혈이 아닌 혼혈들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고 그러한 구분은 당사자들 에게 차별로 작용하고 있다. 왜 굳이 구분해 불러야 할까? 왜 굳이 구분해야 할까. 아니, 왜 굳이 구분해 불러야 할 까. 단일민족신화가 만들어낸 순혈주의에 대한 갈망, 그리 고 그러한 신화와 갈망이 깨지는 데 대한 공포가 작용했 을 것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신념체계가 사회변화의 속도 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 다. 여기에 더해 극단적 양극화가 초래한 불안한 생활이 나 아닌 다른 모두에 대한 배제와 혐오를 불러왔고, 그것 이 약자들에 대한 차별로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한글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 안에 담긴 평등사상 때 문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평등한 문자생 활, 더 나아가 평등한 사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글 이 갖는 과학성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572회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세계화를 도모하기보다는 한글의 창제원리에 담긴 ‘평등사상’을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실천 하는 것이 더욱 값진 일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1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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