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길, 법무사의 길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9월 20일 저녁 7시, 수원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춘 공연장으로 알려진 ‘수원 SK아트리움’에서는 의미 있는 공연 하나가 막 막을 열었다. 법무사이자 아마추어 바리톤 성악가로 활 동하고 있는 은성기 법무사의 ‘독거노인 후 원 음악회’다. 비가 오는 평일이고 교통이 매 우 불편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00석 규모의 공연장 좌석이 만석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법무사 중에는 시인이나 소설가, 연극배우 등 예술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렇 게 성악가로 활동하며 후원 음악회까지 개최 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아 그 사연이 궁금 해졌다. “올여름이 유난히 더웠잖아요. 어느 날 TV를 보는데,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쪽방에 서 독거노인들이 선풍기도 없이 부채질을 하 며 더위와 싸우고 있더군요. 많이 안타까웠 어요. 뭐라도 도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가 제 재능을 살려 후원 음악회를 열어보기 로 했죠. 음악회를 통해 들어오는 후원금을 수년간 봉사활동을 해온 원천동사무소(수원 시 영통구)에 기부하려고 합니다.” 은성기 법무사는 검찰수사관으로 일하다 1999년 법무사로 개업했다. 그는 수원에서 늦둥이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난히 그림 과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던 감수성 많은 소 년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졸업 3일 만에 아버님이 돌 아가시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검찰 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아마도 평범한 집안형편만 됐어도 저는 예술계통으로 갔을 거예요. 하지만, 당장 가족들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었으니 도리가 없었죠. 검찰 수사관이 되니 업무도 딱딱하고 항상 긴장 속에서 일해야 해서 업무 만족도가 높지 않았어요. 힘든 시절이었죠.” 하지만 어느 날, 그의 마음을 돌려놓는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강제 집행 면탈죄로 수사 중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의 피해자는 환경미 화원으로 가해자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어 가정이 풍비박산된 상태였 다. 그러나 사건의 가해자는 단돈 500만 원을 공탁한 것이 전부였고, 검사의 무혐의 결정 이후 재수사를 받고 있었다. 담당 수사관이었던 은 법무사는 사건의 피해자가 매우 억울한 상황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10개월을 수표추적 등 수사에 매달려 결국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강제집행을 피해 보려고 임대차계약서에 임차인을 누나로 해놓았지만, 은 법무사가 해 당 구청까지 찾아가 가해자의 이름으로 된 진짜 계약서를 찾아낸 것이 다. 결국 이로 인해 가해자는 실형 선고를 받았고, 피해자는 민사소송 에서 제대로 된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사건은 법조인으로서 내게도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 어요. 범죄 피해자를 도왔듯이 일반 시민들을 위한 법률구조 활동으로 삶의 보람을 찾고 싶었죠. 그래서 법원을 퇴직하고 법무사 사무소를 개 업하게 되었어요.”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줄 때 은 법무사는 직원이 1명뿐인 작은 사무소를 홀로 운영 중이다. 큰 수 입은 바라지 못하지만 수원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경기도청 법률상 담위원, 수원시 공동주택관리 전문 감사관 등 지역사회의 공적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특히 어린 시절 못다 이룬 예술가로서의 꿈을 되살려 환자들을 위한 위문 공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생계를 위해 검찰공무원이 되었지만, 늘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음악 에 대한 끈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원래 비틀스를 좋아했고 팝 음 59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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