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0월호

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갑자기 나의 존재에 습격을 받는다. 나는 갑자기 내 행동의 야비함을 온전히 실감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열쇠구멍을 몰래 들여다보던 나의 행동이 타자에게 들킴으로써 비로소 부끄러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에 관한 나의 자아는 원래 내 의식 안에 들어있던 것이 아니라, 타자 의 시선을 내가 의식하면서 비로소 발생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타자의 시선에 의해 나를 부끄러워하게 됨으로써 자아가 만들어지는 계기를 찾 게 된다. 나의 부끄러움은 ‘타자 앞에서 자기에 대한 수치’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나를 자신의 세 계에만 갇혀있는 존재로 놓아두지 않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반성 작용을 통해 자아를 만들어 가는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는 타자와의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단순히 창피한 감정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부끄러움은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다리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끄러 워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혼자가 아니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부끄러움이 생겨난다는 말이 꼭 내가 명백히 죄나 잘못을 저질렀 을 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뇌물을 받거나 성추행 같은 짓을 했다가 들통이 났을 때, 그 사람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파렴치한 범죄자로 언론에 보도되는 데 따른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부끄러움은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을 때도 무겁게 다가 온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뒤에 우리는 자책하며 죽은 아이들에게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사실 나 는 세월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이들을 버리고 탈출한 승무원들도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 이고, 이윤에 눈멀어 그런 배를 출항시킨 해운회사도 모른다. 아이들을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한 정부도 나와 관련이 없다. 하지만 나는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아이들을 죽인 것 같았다. 무엇일까. 아이들의 죽음에 내가 직접 관여된 것은 없지만, 그런 죽음을 만들어낸 이 사회를 그대로 방치해둔 공범자일지 모 른다는 죄책감이 우리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내가 아이들을 그렇게 죽도록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두는 사회에 대한 책임은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죄라고, 나의 양심 은 말하고 있었다. 누가 손가락질하며 뭐라 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생겨난다. 83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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