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양심은 절망을 껴안고 뒹군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한 많은 지성들은 참담한 절망 속에서의 부끄러움을 토로했 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유대 인 수용소를 가보고는 학살의 참상 앞에 절망했다. 그래서 아도르 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했다.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다는 것 은 부끄러움의 표현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그 같은 학살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는 데 대한 자괴감으로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인들은 시를 썼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엄습할수록 오 히려 시를 썼다. 야만적이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학살을 증언하고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시라도 써야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 최명란은 아우슈비츠를 다녀오고서도 일상을 챙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고백했다.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 서도 /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먹었고 /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 녹 같 은 연애를 했다.” - 「아우슈비츠 이후」 중에서 그것은 아우슈비츠에 다녀오고서도 태연히 일상을 살고 있는 자기 모습의 부조리함에 대한 고백이었다.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모두가 고통스럽게 죽어간 상황에서도 나의 기적 같은 생존을 다행스럽게 여길 정도로 이기적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 니던가. 하지만 인간은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기적 태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반성하 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이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우리의 내면에 공존하기에 인간 은 번뇌하며 그 삶이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다.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適 者)들은 생존했고,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며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아프게 고백 했다. 그에 따르면 살아야 할 사람들이 죽은 것이고, 죽어도 될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래서 레비는 묻는다.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 대신에 내가 살아남은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 서 자신을 찬찬히 검토하고, 자신의 기억들을 모두 되살리려 애쓰며 스스로를 점검해본다. 레비가 자신의 범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은, 진짜 증인이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문화의 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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