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야 할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생존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아오지 못한 그들이 원칙이 었고, 살아남은 우리는 예외라며, 레비는 스스로가 가짜 증인임을 고백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 의 부끄러움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레비는 양심의 증언을 했다. 그는 본래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얼마 되지 않은 1947년에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증언한 『이것이 인간인가』를 출간했다. 그러고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1986년에 또 한 번의 증언록인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펴내고는 바로 다음 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었던 증언조차도 그를 깊은 절망에서 구해내지는 못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는 부끄러움은 단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에 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또한 동시대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삶의 바위를 끝없이 굴 려 올려야 하는 고통이 혼자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산꼭대기를 향해 저마다의 바위를 굴려 올리고 있다. 모든 인간에게서 고통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쇼펜하우 어는 ‘동고(同苦,Mitleid)’의 사상을 통해 고통의 윤리학을 제시하고 있다. 선한 사람은 남의 고통 을 보면서 자신의 고통처럼 아주 가깝게 느낀다. 그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완화시키 기 위해 자신의 향유를 단념하고 궁핍을 감수한다. 그 대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이타적인 행위 를 한 뒤에 충족을 느낀다. 이때 우리의 참된 자아가 자신의 인격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 속에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넓히고 껴안을 수 있을 때 나의 양심은 평정을 찾 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려울 때 다른 이들에게 혼자서는 힘드니까 내 손을 잡아 달라 부탁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려울 때는 내가 그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 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세상을 함께 사는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주는 존재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 연 나는, 손길이 필요한 그 누구에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힘들 땐 내 손을 잡아요 85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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