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0월호

70년대 파주순회심판소, 직원은 달랑 한 사람 1973년, 필자는 두 번의 시험을 치렀다. 5월 19일 검 찰서기보시험, 6월 5일 법원서기보시험. 운 좋게도 두 시험 모두 합격해 그해 9월 1일,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 형사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파주순회심판소’라는 긴 이름 의 신설 순회심판소에 발령을 받았다. 이어 검찰청에서 도 서울지방검찰청 증거물 압수계로 발령을 받았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이중으로 시험을 치르 고, 이중으로 발령까지 받았을까 의아할 수 있겠으나 70년대에는 고시 낙방생에게 큰 기회가 되었던 두 시 험을 모두 치르고 이중으로 합격한 후 자신의 형편에 따라 최종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필자도 그런 경우였고, 검찰청과 법원 중 최종적으 로 법원 근무를 선택했다. 당시 검찰에 근무하던 한 선 배가 법무사 개업에는 법원 경력이 더 좋다고 해서 그 조언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파주순회심판소는 필자의 첫 근무지가 되었다. 당시 막 신설된 파주순회심판소는 파주등기소 한쪽 에 책상 몇 개 놓여 있는 것이 전부였을 정도로 열악했 다. 직원도 당시 법원주사였던 오병훈 법무사와 필자 단 둘뿐, 그나마도 접수사건이 없다고 나중에는 필자 혼자 남겨졌다. 덕분에 법원서기보시보에 불과했던 필 자가 “심판소장님”으로 불리며 놀림을 받기도 했다. 당시 순회심판소는 한 달에 한 번씩 소액심판과 즉결 심판을 처리했다. 그러나 순회심판이 있는 날만 즉결사 건을 직접 처리했을 뿐, 다른 날은 즉결사건부에 접수 만 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실제의 즉결심판은 의정부지원에서 이루어졌는데, 당시는 경찰서에 호송차량도 없던 때라 경찰이 즉결심 판 피의자들을 시외버스에 태워 의정부로 호송해 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동묘지 옆, 오싹했던 순회심판소 관사 파주순회심판소(파주등기소) 청사는 일제 강점기에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원으로 사용되었던 구식 건물이 었다. 청사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청사와 정문 옆으 로는 관사가 있었다. 청사는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인가도 없었고, 주변 풍경은 황량하고 을씨년스러 운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청사를 둘러싸고 여러 출처를 알 수 없 는 괴담들이 떠돌았다. 이를 테면, 청사 안에 서 있는 고 목나무에 누군가의 처가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는 소문 같은 것이다. 당시 등기소장은 관사에서 살고 있었는 데, 어느 날, 필자에게 관사에 들어와 살라며 권유했다. 마침 집에서 청사까지 매일 통근하는 일이 매우 불 편하던 터여서 소장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비바람이 심한 날이면, 낡은 청사가 삐걱거리는 소리며, 전신줄이 바람에 윙윙 날리 는 소리, 온갖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와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박 계장” 하고 필자를 찾는 등기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 모른 척하며 한 공간에서 밤을 보냈다. 그러다 인적이 드문 새벽, 누군가 등기소를 지나가는 것 같은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깜짝 놀라 불을 환하게 밝히고 몽둥이를 가져와 옆에 두고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으스스한 그런 밤을 보낸 지 두 달 정도 되었을까. 결 국 등기소장은 객식구를 들였다. 당시 군대 토지사건 정리 차 등기소로 파견되었던 군인 몇 명을 관사 한 켠 에 살도록 한 것이다. 공포의 밤은 그렇게 멈추었으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한 기분이 든다. 87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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