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0월호

이 밖에도 등기필증을 등기권리증으로 인증하던 구 「민법」 당시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다. 지금도 가끔 등기필증을 분실한 사람들로부터 재발급을 받을 수 없 냐는 문의를 받곤 한다. 제도가 바뀐 지 오래인데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등 기필증을 분실했다고 전전긍긍하거나 등기필증을 분 실한 법무사가 곤욕을 치르는 일도 있는 것이다. 한편, 1978년에는 부동산 거래가 활황을 이루어 등 기부등본의 발급이 폭증하던 때였다. 덕분에 서부등기 소 등본주임 직을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등기부 한 권에 50필지씩 기재되던 구등기 부 시대여서 등기부등본 발급 절차가 매우 복잡했다. 등기부등본 한 통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등기신청서 → 등기부 색출장 검색과 부책의 표시(신청서에 그 번 지가 어느 동·면, 몇 책, 몇 페이지라고 표시하는 작업) → 등본 창고로 이관 → 등기부 소재의 검색(등기부는 매일 서가 → 기입계 → 조사계 → 열람대 → 등본계 → 등본창고 보관대 → 서가의 순으로 순환하므로 등기부 소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 등본계로 보내어 복 사 → 등본주임이 인증하여 발급 → 신청인에게 교부” 하는 기나긴 절차를 거쳐야 했던 것이다. 이런 절차를 모두 거쳐 등기부등본 1통을 발급하는 데 며칠이 걸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급히 등본 이 필요한 민원인들과 등본계 직원 간의 다툼이 하루 에도 수십 번씩 벌어졌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직원들은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등본을 발급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수개월 동안 이른 아침 8시 전후에 출근해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16시간의 강행군을 했 고, 주말에는 등기부 창고의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 출 근했다. 결국 건강에도 적신호가 왔다. 하지만, 건강보다 더 두려운 것은 매일 수백 명씩 밀려드는 민원인들을 상 대해야 하는 일이었다. 당시 서부등기소는 3층에 있었는데 아침 8시 반경 이 되면 등기부등본을 신청하려는 민원인들과 발급을 받으려는 민원인들로 북적이기 시작해 두 줄로 늘어선 수백 명의 대열이 1층 정문에서부터 마당을 거쳐 3층 등본 창구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사철이 되 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는 것뿐이었으나 어찌 된 일 인지 인사이동이 되어야 할 시기에 아무리 기다려도 발령이 나지 않고 계속 유임이 되었다. 등기소장이 일부러 본원에 청탁을 넣어 필자를 누락 시켰던 것이다. 소장으로서는 유능한 부하라고 생각해 서 한 일이었겠지만, 필자로서는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어 사직을 각오하고 항의를 하고서야 서부등기소 등 본계를 떠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끔찍했던 서부등기소 주임 시절이었 지만, 지금은 그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다. 89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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