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퇴와 공민왕 시대’를 내놓음으로써 독자들의 발길을 고려 쪽으로 한 발 더 끌어당겼다. 고려, 기우는 통일신라 말기의 혼돈 속에서 후고구려 (태봉) 궁예와 후백제 견훤을 제압하면서 918년 왕건이 세운 국가였다. 마지막 공양왕까지 34대 왕에 이르는 고려 역사는 초기 문신귀족정치, 중기 무신정권, 후기 원나라 간섭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후기 역사의 특징은 25대 충렬왕부터 30대 충정왕 까지 ‘충’자가 붙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던 원나라 사위들이었다. 그리고 31대 왕 이 개혁군주 공민왕이다. 물론 공민왕의 왕비도 원나라 보루테무르의 딸 노국공주였다. 국력이 쇠퇴한 원나라로부터 벗어나 왕권을 되찾으 려는 공민왕의 개혁정치는 4개의 바퀴가 맞물리며 흘 렀다. 공민왕과 돌격대장 신돈, 원나라 기황후와 부원배 세력, 이성계와 정몽주 등 신진사대부가 각각의 바퀴였 다. 기황후는 독립하려는 공민왕의 폐위를 모사했으나 노국공주는 친정의 나라를 등지며 남편인 공민왕을 도 왔다. 공민왕은 승려 신돈을 불러들여 개혁을 시도함으 로써 ‘신돈 천하’가 시작됐다. 기황후, 행주 기자오의 막내딸로 원나라에 공녀로 끌 려갔으나 순제의 사랑을 받아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르 를 낳고 제 1황후에 오른 풍운녀. 고려에 있던 기철, 기 원 등 그녀의 친정 식구들이 친원파를 이끌며 국정을 농단하다 공민왕의 반격으로 일거에 멸문지화를 당했 다. 기황후가 복수를 위해 순제를 설득해 군사를 보냈지 만 최영과 이성계에게 대패했다. 신돈, 창녕 출신으로 어머니가 사원 노비였다. 그 역 시 노비 신분,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일찍 출가한 그의 법명은 ‘변조’였는데 승려 부류에 끼지 못하고 겉 도는 왕따였다. ‘신돈’은 공민왕을 만난 이후 붙여진 성 과 이름이었는데, 그의 부계가 영산 신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단초이다. 공민왕은 어느 날 꿈속에서 자객의 칼을 맞았는데, 어떤 중이 자신을 구해주는 꿈 을 꾸었다. 이 꿈이 둘을 만나게 해 준 징검다리였다. 토사구팽, 역사는 패자와 승자의 반복이다. 어제의 승 자가 오늘의 패자가 된다. 내 사람, 네 사람 구분 없이 불 신했던 공민왕의 성정을 미리 알았던 신돈은 공민왕이 부를 때 신분보장을 요구했고, 공민왕은 ‘하늘과 부처의 이름을 걸고’ 서약서를 써주었다. 이로부터 공민왕의 ‘행 동대장’ 신돈의 천하가 시작됐지만 끝내 공민왕에 의해 제거됐다. ‘문자도 몰랐다’는 신돈에 대한 기록은 이후 역사가들 의 폄훼일 가능성이 높다. 공민왕 사후 뒤를 이었던 우 왕(모니노)이 ‘신돈과 반야 사이 아들이었다’는 출생의 비밀 설까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는 격동의 시 기 역사 또한 비례해 격동한다. 『몽골 제국과 고려』 시리즈는 1권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 2권 ‘혼혈왕, 충선왕-그 경계인의 삶과 시대’, 3권 ‘고려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4권 ‘몽골제 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이다. 고려 역사의 종결 편인 제4권을 읽고 재미를 느끼면 나머지 책들도 마저 읽기를 권한다. 이 시리즈의 독서에 만족도가 높다면 『고려 무인 이야기』도 출판사에서 복 간을 계획하고 있다니 그것도 기다려볼 만하다. 공민왕의 배신으로 막을 내린 신돈천하 91 법무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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