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현자는 삶을 회피하지도 않거니와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현자에게 있어서는 살아있는 것이 아무런 번뇌도 되지 않고, 또 삶을 중단하는 것이 무언 가 나쁜 일로 생각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훌륭하게 살기 위한 수련과 훌륭하게 죽기 위한 수련은 본디 같은 것이었다. “죽음은 그것을 기다리는 만큼 괴롭지 않다”고 했던 오비디우스, “죽음은 한순간의 이 동이니만큼, 생각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죽음에서 주로 두려워하는 것 은 습관적으로 죽음에 앞서 오는 고통이다”라고 했던 몽테뉴, 모두가 죽음은 막상 아무런 고통이 아닐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 것을 얘기했다. 물론 죽음은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최대 사건이다. 내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 의 죽음은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만 큰일일 뿐, 거대한 자연의 이 치로 보면 아무 일도 아니다. 사실 세상에 태어나서 생식의 임무를 마친 개체가 노화하고 죽는 것은 진화의 법칙으 로 볼 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한번 태어난 개체가 영구 히 살게 된다면 지구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생식의 임무를 마친 개체는 자신이 낳아놓은 개체들이 성장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죽어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그렇게 내가 죽어야 내가 낳은 개체들이 뒤를 이 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오래오래 살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희망일 뿐, 진화의 법칙에게는 그 같 은 사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나에게는 잔인한 일이지만, 내가 죽어야 지구상의 모 든 개체들이 평화롭게 사는 환경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나는 죽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어찌 보면 이 넓은 우주에서 먼지 하나 왔다가 가는 것만도 못한 것이 우리의 탄생과 죽 음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의 생명이 태어났다가 죽어간 것일까. 분 명한 것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사자로서의 집착을 떠나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생각한다면 죽음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렇기에 너무 원통해할 일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있다”며 인간을 가리켜 ‘죽을 산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 81 법무사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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