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1월호
1시간짜리최후진술, 1개의고무도장으로 타자기가보급되기전, 재판조서는모두펜으로직접 써서 작성해야 했다. 모든 공적 서류들이 그렇지만, 검 찰청의 서류들도 법률에 정해진 양식에 따라 관행적으 로 사용되는 문구들이 많았다. 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이런관행문구들을써넣는일은생각보다고역이었다. 법원주사등에게는조서를쓰는업무가바로그런일 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겨난 게 바로 ‘고무도장’이다. 민 사조서 작성 시 자주 사용되는 ‘소장 진술’, ‘답변서 진 술’, ‘증거관계별지와 같음(서증·증인 등)’, ‘소송관계표 명’, ‘변론종결 등’의 문구들을 고무도장에 새겨서 수십 개의고무도장을날인해조서를완성하는것이다. 나중에는 요령이 늘어서 ‘의제자백조서’ 같은 것은 고무도장만으로충분히완성하는경지에이르렀다. 고무도장은 이러한 편리함으로 누구든 입회주사로 발령을 받으면 맨 먼저 고무도장부터 챙겼고, 전근을 갈때도반드시챙겨가는필수품이되었다. 그러나 고무도장을 이용해 조서를 간단히 작성하는 건편리했지만, 형사조서에활용되는것에대한이의제 기로난감할때도있었다. 조서작성에서원칙은, 민사조서의경우는변론의요 지를적는것이나형사조서의경우는진술을가감없이 그대로기재하는것이다. 하지만, 법정에녹음기능도속 기사도 없었던 시대에 입회 주사가 피고인이나 변호인 이빠르게쏟아내는최후진술을그대로받아적는다는 것은불가능한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1시간 이상 최후진술을 해도 조서는 간 단히핵심만기록되었고, 그중관행적인문구들은고무 도장으로대체되었다. 예를 들어 최후진술을 서면으로 제출하지 않았다면, 변호인 진술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진술’이라는 고무도 장, 피고인진술은 ‘억울하다고진술’, ‘관대한처분을바 란다고 진술’, ‘공정한 재판을 바란다고 진술’이라는 고 무도장을사용해약식으로기재하는것이다. 하지만세월이흘러법정에속기사가배치되고, 녹음 기능이설치되면서고무도장의시대도막을내렸다. 최후진술의 내용은 법률적인 평가와는 크게 관련이 없었으나 긴급조치 9호사건 등 시국사건의 변호인이 나피고인이최후진술전문을기록으로남기지않는기 재형식에이의를제기하면서, 속기사가배치되고녹음 시설이확충되는등현재와같은법정의모습을갖추게 되었기때문이다. 숨만잘못쉬어도잡아간다는긴급조치9호사건 1972년 10월 17일, 「유신헌법」이공포되며여러가지 긴급조치가 발효되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긴급조치는 1975년 5월 13일발동된긴급조치9호였다. 이는긴급조치의결정판으로▵「유신헌법」에반대하 거나이를보도하는행위를일절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으며, ▵이 조치에 의한 주무장 관의조치는사법적심사의대상이되지않았다. 그러다 보니 1970년도 말, 법원 형사재판의 주 업무 는긴급조치 9호사건을처리하는일이었다. 당시대표 적인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인 ‘남민전 사건’ 등 시국 사건들은 그 피의자만도 수십 명씩 되었기 때문에 사 건 기록이 봉고차에 가득 실릴 정도로 많아서 한 재판 부가 한 사건씩만 맡아도 재판에 수개월이 소요될 정 도였다. 이러한무소불위의긴급조치9호다보니발효되었던 4년 6개월 동안 1,000명 이상의 전과자가 양산되면서 국민의기본권을억압하였다. 이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언론의 자유뿐 아니 라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지 못한다는 것이 얼 85 법무사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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