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명씩 줄을 서서 대기하는 민원인들의 문의에 답변을 하다 보면 정작 필요한 주요업무의 처리가 늦어져 문건 접수 업무가 마비되곤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묘안 하나를 생각해냈다. 민원인들이 자주 묻는 서식을 비치해 답변을 하는 대신 서식을 보 여주고 문건을 작성케 하면 편리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곧 필체가 좋은 강 모 주임을 불러 수 십 종의 민원서식 샘플을 만들도록 하고, 이를 민원인 실에 비치했다. 그때부터 민원인들의 문의가 들어오면 답변 대신 해 당 서식 샘플을 보여주고 그대로 작성해 제출하라고 안 내했다. 그러자 놀라울 정도로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졌 다.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 모습을 본 사법서사들이 넌 사법서사 안 할 거냐, 밥줄 다 끊는다며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민원인의 불 만이 눈에 띄게 감소하자 상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어 졌다. 민원실에는 더 많은 서식이 비치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복사기까지 들여놓고 민원인들에게 직접 서식을 교부토록 했다. 얼마 후에는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그러자 전국 법원 에서 벤치마킹을 하겠다며 견학을 오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점점 비치하는 서식도 다양해졌고, 지금과 같은 민원서비스 시스템이 정착되는 기초가 되었다. 필자는 이 일을 오랫동안 폐쇄적이었던 법원이 처음 으로 빗장을 풀고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첫 사례 로 기억하고 있다. 박재승 판사, 박재승 입회서기 서울민사지방법원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내게 보통우편 편지가 한 통 배달되었다. 발신자를 보니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필자가 근무하는 “민사2과”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별 생각 없이 편지를 뜯어보았다. 그런 데 내용이 재판에 관련된 것들이고 내 편지는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필자와 동명이인인 판사에게 온 편지였 다. 편지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필자는 곧 박재승 판사 를 찾아갔다. 그런데 박 판사는 이미 나의 존재를 알고 있 었다며 반가움 반, 묘한 느낌 반으로 필자를 맞이했다. 알고 보니 비상계획관실 직원이 당시 동원예비군이 었던 필자와 일반예비군이었던 박재승 판사를 헷갈려 필자의 4박5일 예비군 동원영장을 박 판사에게 전달한 적이 있었고, 그 일로 자신과 한자까지 똑같은 일반직 직원 박재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필자는 필자가 모신 이흥복 판사(전 대전고등법 원장)와 박재승 판사의 후일담도 듣게 되었는데, 두 분 이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해서 동기모임을 나가면 이 판사가 박 판사에게 “박 계장~”이라 부르며 놀리곤 했 다고 한다.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훗날 법무사 개업을 하고 도 계속되었다. 필자가 개업한 성남지원 맞은편 ‘박재승 법무사 사무소’ 왼쪽에는 양재승 법무사 사무소, 오른 쪽에는 박병승 법무사 사무소가 각 20미터 이내에 포 진해 있다. 박재승, 양재승, 박병승 법무사 사무소를 헷 갈리지 않고 잘 찾아가는 일은 고객뿐 아니라 법무사 당사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도 세 법무사는 서로의 우편물을 잘못 집어가거 나 착각하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 87 법무사 2018년 11월호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