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1월호

20세기 후반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 대화가 병행되기 이전에 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이 받았던 ‘반공, 멸공’ 교 육의 강도는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간 첩신고 113’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간첩은 주로 ‘(통금시 간 근방인) 새벽에 산에서 신발에 흙이 묻은 채 내려오 는 사람, 물건값을 잘 모르는 사람, 지리를 잘 모르는 사 람, 말투가 이상한 사람’ 등이었다. 행여나 간첩 포상금 을 타면 주택복권 당첨처럼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일이었 기에 신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매우 높았다. 당시 어린 학생들 중에는 심지어 ‘북한은 얼굴이 빨갛 고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들만 사는 무서운 곳’으로 인 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렸을 때 강하게 박힌 인식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지금 저 기준으로 간첩신고를 한 다면 아마도 국정원은 전화가 마비돼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을 텐데도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은 여전 히 막연하다. 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비슷하다. ‘거주이전·정치·종교· 사상의 자유가 없는,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 왕정국가 같은 독재와 고사포 총살의 살벌한 나라, 저녁이면 암흑 천지라 이웃이나 직장동료들끼리 어울리는 일 없이 각 자 자기들 집에서 잠만 자는 숨 막히는 나라’라는 정도 인식이 전부였다. 어쩌다 TV에서 그렇지 않은 북한사람 들의 실생활이나 문화를 보여줘도 ‘저건 보여주기 위해 시키는 대로 하는 쇼일 뿐, 모두가 실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앞섰다. 필자의 그런 생각은 지난해 어떤 북한 전문가를 만나 면서 ‘충격적으로’ 교정됐다. 그는 평양의 김일성대학 출 신으로 남한 주요 신문사 기자였다. “남한 사람들, 대통령 욕 마음껏 하데요? 그렇게 욕 하면 행복합니까? 북한은 김정은 욕만 안 하면 아무 일 없습니다. 평양은 이미 장마당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돈이 대우를 받다 보니 부패와 뇌물이 만연합니다. 거기다 마약은 북한의 발전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국가에서 직장을 주므로 남한과 달리 상사에게도 떳 떳이 대듭니다. 심지어 대판 싸우고 다른 직장으로 이동 하기도 합니다. 거기도 돈만 있으면 아파트 투기까지 할 것 다 합니다. 김정은 추앙은 남들이 다 하는 분위기에 서 혼자 안 하면 드러나 찍히니까 그냥 하는 겁니다. 북한사람들은 남한 드라마, 상품 등 풍문으로 남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남한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잘 모릅니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과 그곳 사람들의 실상에 대 해 궁금해하는 나에게 그가 대뜸 한 말이다. 그날 필자 는 북한의 실상에 대해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전 문가는 1998년 탈북, 2002년 서울에 입국한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다. 그가 최근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를 출판했다. 그는 이미 8년 전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 기』로 독자들에게 크게 이름을 알렸었다. 신간 『평양 자 본주의 백과전서』에는 ‘술과 접대, 사설 버스, 남한문화 침투(한류), 평양 로데오거리, 장마당, 치맥 배달사업, 학 부모 치맛바람과 과외, 선망의 직업 의사, 연애와 결혼, 성과 섹스, 매춘과 마약, 재건축과 아파트 투기, 당구장 과 삼겹살, 북한 창업 블루오션, 북한만의 비즈니스 문 화’ 등등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북한의 자본주의 시장화 현실을 꼼꼼하게 전한다. 장차 북한에 가 사업할 궁리까진 못 하더라도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알아두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자본주의 파고든 북한의 실상, 꼼꼼하게 전해 89 법무사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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