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2월호
오, 추석 등 절기마다 찾아오는 명절에는 3박 4일 농악 과음주가무를즐기며고단함을달랬었다. 어머니들은아침저녁빨래들고모이는공동우물가에 서박장대소를터뜨리며스트레스를해소했다. 그사이사 이는동네처녀총각들의혼사와상여소리애달픈초상이 있었다. 아이들을위한놀이터시설은단하나도없었지만 골목과도랑(개천),저수지와산등성이가모두놀이터였다. 동네어른들은남의밭에서가지를따먹는조무래기 가 누구네 아들인지 훤히 알았고, “이놈아, 생가지 많이 먹으면입술붓는다. 한개만먹어라” 하며지나갔다. 행 여 어떤 아이가 위험스럽다 싶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지 게벗고아이부터챙겼다. 황혼녘이면 동네는 아이들 부르는 엄마들 고함으로 요란했지만 집에 오지 않는 아이들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동네누군가네집에서놀다가그집형제자매들 틈에끼여밥을얻어먹고있을것이뻔했기때문이다. 어 두운 저녁이면 등잔불이 흐르는 초가집마다 웃음소리 가담벼락을넘었고, 몇몇집은어른들의술추렴으로왁 자지껄했다. 그랬던시골에어느날부터 ‘서울광풍’이불었다. 자고 나면동네형과누나들이서울로, 도시로떠났고아예온 가족이떠나는집도있었다. 그틈바구니에묻혀떠나온 이들로 우주만큼 거대한 도시의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 고, 어른들의모든촉각은아파트가격에집중되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팎에서 위아래 층에 사는 이웃 을만나도시내버스나지하철을같이탄사람들의풍경 처럼묵묵히허공이나핸드폰에시선을둔채각자의집 으로 향한다. 집 안 역시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와 손자, 부모와자녀등동거가족들이도란도란대화를나누는 시간보다각자의방에들어앉아각자의볼일을보는시 간이더많다. 어른들은 TV, 아이들은 핸드폰에 묻히고, 젊은 부부 는 돌아누워 ‘카톡 메시지’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니 ‘멀 리있는친척보다가까이사는이웃사촌이낫다’는말도 이젠 쓸 일이 없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우리네 삶은 개인이 전부여서 동네, 마을, 공동체 같은 풍경은 전설 이됐다. 그래서 「나자연(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이 떴다. 기계처럼메마른도시생활에염증이난어른들이옛날 이 그리워 대리만족을 해서일 것이다. 필자 역시 「나자 연」 열성팬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저렇게 혼자는 도 저히 못 살겠고, 예전 마을처럼 여러 가구가 마음 열고 같이 사는 동네라면 참 좋겠다’고. 실제로 귀농귀촌을 단행했던 도시인들 중 정착에 실패해 다시 도시로 회귀 하는사람이많다. 신문기자조현의책 『우린다르게살기로했다』는 ‘설마 그런곳이있을까?’ 싶은 ‘마을’을자세히취재했다. 3년동 안우리나라공동체마을 18곳, 외국의 5곳을돌았다. 멀 리 갈 것 없다.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28통 공방골목길’ 에도시사람들이꿈꾸지못할 ‘사람사는동네’가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는 ‘신흥마을’이 있다. 서울 직장 인한귀영씨는공방골목으로이사와이웃들과 ‘정신없 이 어울리다 보니’ 병이 나았다. 신흥마을 사람들은 그 곳의 삶이 ‘해외여행보다 재미있다’고 이구동성이다. 파 주 공방 동네는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신흥마을은 뜻 맞는 이들의 계획적 이주였다. 23곳 마을의 형성 방식 과 목적은 다양하지만 그 속의 삶은 모두 비슷하다. 사 람사는세상맛에푹빠진다는것이다. 설마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은 동네들 취재기 91 법무사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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