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1월호
서리꽃이 핀 유리문을 밀어젖히자 낯익은 풍경이 들어온다. 삐뚤빼뚤흩어져있는탁자와의자들, 그리 고주방에서열심히그릇을닦고있는주인장황씨와 무언가 음식을 만들고 있는 황 씨 부인. 아직 이른 시간인지 다섯 개의 탁자는 비어 있고 홀 네 귀퉁이에 매달려 있는 스피커에서는 마치 몰아 치는 거센 파도처럼 힘찬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후 내내 찌뿌둥하던 하늘을 보며 오늘은 오랜만에 그곳에 들러보리라 마음먹었다. 퇴근시간이되자하늘하늘 가랑눈이내리기시작하더니곧바로소 나기눈으로 변하였다. 진눈깨비라도 퍼 부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맞았다. 이런 날에는 버스의 법칙이나 머피의 법칙이 정확 하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기다리다 지쳐 길 건너 선술집에서 한잔하다 보면 버스는 무심히 지나 가버린다. 기다리는여인은오지않고기다리다지쳐 잊을 만하면 여인이 손을 내민다고 했던가. 주인 황 씨가 새해 벽두부터 손님에게 선사한 음 악은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었다. 빈 필하모닉 오케 스트라가 신년음악회에서 첫 번째로 연주한 곡이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트럼펫소리가힘차게울려퍼졌다. 다다다닥~ 황금돼 지가 뛰어올라 나에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 “아니 웬 대박!”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돼지만으로도 대박인데 황금돼지라니! 황 씨가 나를 보자 고무장갑 낀 손을 들어 올리며 씽긋 웃는다. “어서 오시오, 법 선생.” 예전에 법률상담을 한 번 해준 이래 그는 줄곧 나 를이렇게불렀다. 그는키가크고호리호리한편이다. 길쭉한 얼굴에 눈썹이 짙고 이마를 가로질러 흘러내 린 머리카락이 그의 음악적 감수성을 엿보게 한다. 이에비해황씨부인은작달막한키에몸매는적당 히살집이붙어행동이굼뜨지만음식솜씨만은천하 일품이다. 화장기 없는 동그란 얼굴은 수더분한 동네 아줌마 그대로다. ‘우리동네 포장마차’는 간판 이름만 포장마차다. 실제로는 뒷골목 3층 건물 모퉁이에 들어앉은 일반음식점이다. 길 건너에는 제법 규모가 큰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사무실 앞 여수밤바다 단골식당이 문을 닫자 찾아낸 곳이다. 85 법무사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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