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3월호
어떠한가등쉽게대답할수없는문제를툭툭던지곤 하여 나를 난처하게 만들곤 하였다. 그는 10여 년 만에 받은 박사학위를 거머쥐고 이곳 저곳 교수채용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의 불 운은 개인적인 자질 탓인가, 아니면 기 부금을 요구하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 탓인가. 우리는 송 박사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존 롤스의 정의론을 전수받았으니 서당 개삼년에풍월을읊듯이피상적으로롤스의정의론 을읊조릴만큼은되었다. 우리친구들은하나같이정 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하여 울분을 터뜨렸다.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과 기회균등의 원칙을 상 기해 봐라.” 누군가가 외쳤다. 술시가 무르익었는지 제법 깊고 도 세게 나갔다. “글쎄, 그 원칙은 읽어도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 던데...”. 내가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송 박사가 철학 선생답게 마이클 샌델의 이 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만일 어느 대학이 입학금을 경매에 부쳐 높은 금 액을 써낸 순서대로 입학생을 뽑는다면 이것은 공정 한 것인가, 아닌가라고 샌델이 물었어. 친구들 생각 은 어떤가?” “물론 공정하지 않다.” 우리들은 즉시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공정하지 않은가? 골동품을 경매에 부쳐 파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 잖아.” 그는 마치 샌델 선생처럼 말하였다. 마이클 샌델은 한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 하여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청중이 구름처럼 몰 려들었고, 그가 쓴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베스트셀 러가 되었다. 그 당시 한국사회는 모두 정의에 목말 라 있었는지 철학 강의에 이처럼 열광하고 철학 서적 이 발간한 지 1년여 만에 밀리언셀러가 된 적은 일찍 이 없었다. 물론 이 책이 기존의 철학책과는 달리 일종의 케 이스나 판례를 다룬 법학서처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서 철학적 논증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읽히 는 유려한 문체도 낙양의 지가를 높이는 데 한몫했 을 것이다. 책 서두 부분만 살펴보더라도 2004년 여름, 플로 리다를 덮친 허리케인 찰리 사건부터 상이군인훈장 을 받을 자격을 놓고 벌인 논쟁, 2008년 금융위기 때 의 구제금융 논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의 예, 아 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사건, 1884년 남대서양에서 표류하던구명보트에서의인육사건등을늘어놓으며 독자에게 과연 ‘정의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다. 딱 딱한 이론만 가득 차 있는 철학서가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이야기책 같다. 벌써 남도 곳곳에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화신을 보내오고 있지만 우리나라 시간강사에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구나”라는 시구가 딱 들어맞는 경우라고 하겠다. 86 문화가있는삶 + 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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