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3월호

송 박사는 술은 즐기지 않는다. 밀밭에도 못 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두고 한 시간 정도를 버티면서 강의하듯 혼자 이야기하는 것을 좋 아하는편이다. 나머지넷은주로그의장광설을들으 며 막걸리 한 말 정도는 마시는 주당들이다. 송 박사는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으리으리 빛나는 눈빛을 애써 거두면서도 말투에서는 여전히 분노한 기운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대학의 존재 이유가 무어냐. 골동품을 파는 상점 과는 다르지 않은가. 대학은 학문의 연구와 교육으로 사회의 공동선을 이끌어내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해 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는 그러면서 어제와 오늘 사이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인 흔히 ‘강사법’이라고 일컫는 「고등교육법」 개 정안의 시행을 앞두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일고 있는 시간강사 구조조정 움직임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나 타냈다. 강사법의 핵심은 시간강사에게 방학 중에도 임금 을 주고 퇴직금도 지급하며, 임용기간을 학기 단위가 아닌 1년 이상 임용하되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3년까 지 재임용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은 지금도 대학 재정이 어 려운데 이대로 강사법이 시행된다면 대학은 바로 빈 털터리가될것이불을보듯뻔하다고주장하며, 여러 꼼수를 구상하고 있다. “내가지금출강하고있는대학에서도그런움직임 이감지되고있는데말이야. 말하자면이런거야. 폐강 기준을 완화해서 개설 강좌 수를 줄이고, 그래서 한 강좌당 수강생 수가 200여 명씩이나 되는 대형 강좌 를 운영하는 거야. 그것뿐아니라전임교원이맡는강의시간수를늘 리고, 두명의강사가한사람이 3시간씩맡던것을한 명의 강사에게 몰아주는 거야. 이렇게 해서 시간강사 수를 줄이겠다는 거지. 그렇 게 ‘시간강사 제로’를 목표로 시간강사 수를 줄여나간 다면나야정년이가까워졌으니까그럭저럭버텨나간 다고해도지금한창공부하고있는젊은후학들은바 로 취업절벽에 부닥치겠지. 그거야말로 암울한 절망 아니겠어? 학문의 암흑시대가 도래한 거지.” 이쯤에서 목이 타는지 그는 한 시간 동안이나 만지 작거리기만하던막걸리잔을쭈욱들이켰다. 술권하 는 사회도 함께 온 것인가. 시간강사의처우를개선하기위하여무려 8년여각 고의 노력 끝에 겨우 마련한 강사법이 오히려 무더기 로 시간강사를 해고하는 사태까지 목전에 두고 있다 니 참으로 세상사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벌써 남도 곳곳에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화 신을보내오고있지만우리나라시간강사에게는 ‘춘래 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왔지만 봄이 온 것 같 지않구나”라는시구가딱들어맞는경우라고하겠다. 시간은 매우 철학적인 개념인 동시에 과학적인 개 념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시간에 목매어 있지만 어디 시간강사에 비할 바인가. 다만 시간이 강사법의 역설 을 해결해 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우리의 술판 분위기를 알고 있다는 듯 황 사장이 올려놓은곡은비발디의 「사계」였다. 시간강사에게도 진짜 봄날이 오기를 기원하듯 바이올린을 타고 흐르 는 봄의 선율이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간이여, 영원하라!” 87 법무사 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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