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4월호

으로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교사나 수사관이 적성 과 취향에 맞는지 같은 것은 따져볼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안고 살던 그는 1985년, 뇌물사건으로 수사 를 받던 한 시청공무원의 가족이 그 불명예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사 건을 겪은 후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지고 검찰청을 나온다. “8년 정도 검찰에 있으면서 동생들 학교도 다 졸업시켰고, 어머니께 소도 수십 마리 사드렸으니 장남의 부담감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났을 때였죠. 검찰을 그만두고 절에 들어가 도를 닦 으며 사법시험 공부를 해볼 생각이었어요. 퇴 직금을 모두 어머니에게 드리고 산으로 들어 갔죠. 이후로 한 2년, 자연을 벗 삼아 정말 행 복하게 지냈어요. 내 체질이 승려인가 싶을 정 도로 말이죠.” 그러다 그는 2년 만에 책값과 생활비가 떨 어져 고향집을 찾아가게 된다. 어머니께 드린 소를 한두 마리 팔아 생활비를 충당할 요량이 었다. 하지만, 그 길이 영영 산속 생활로 돌아 갈 수 없는 길이 될 줄이야…. “그날 집을 향해 가다가 땔감을 가득 지고 산을 내려오는 어머니와 딱 마주쳤어요. 그런 데 무슨 일인지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려 하지 를 않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어 집으로 뛰어 가 보니 외양간에서 소들이 삐쩍 말라 죽어가 고 있더라고요. 당시 UR(우루과이라운드)로 수입소가 대거 유입되면서 100만 원 하던 소 값이 10만 원으로 폭락해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한 농가에서 소들을 폐사시키고 있었던 겁 니다.” 다시 어려워진 집안 형편을 알게 된 그는 먹고살기 위해 검찰 사무직시험에 재도전하 기로 결심한다. 결과는 전국 차석. 재응시한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합격한 그는 1988 년,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팀장으로 재 발령을 받게 된다. 이후 그의 인생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열심 히 살았고, 인정도 받았다. 89년 노태우 정부 의 ‘범죄와의 전쟁’ 당시에는 민생치안특별수 사부 팀장(강력계장 보직)으로 임용되어 조 직폭력배 소탕을 총지휘하기도 했고, 90년에 는 서울시장으로부터 ‘서울모범시민상’을 수 상하기도 했다. 49 법무사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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