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4월호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던가. “승승장구하며 잘나가다가 1994년에 검찰 을 다시 나오게 됐어요. ‘범죄와의 전쟁’ 당시 반대하던 정치세력의 역공을 받아 불명예 퇴 직을 하게 되었거든요.” 풍운아 박명하, 경륜선수가 되다 검찰청을 나온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 진다. 법조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프로 ‘경륜 선수’로 화려한 변신을 한 것이다. 자전거경주 베팅 게임인 ‘경륜’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사용되었던 자전거 경기장 의 활용방안으로 고안되었다. 91년 「경륜·경 정법」이 제정되면서 94년 10월 첫 경기가 치 러졌는데, 경륜경기에서 활동할 경륜선수 모 집에 박 법무사가 지원하면서 제1기 경륜선수 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제가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했습니다. 김 천에서 학교에 다닐 때는 4~5km나 떨어진 학교를 뛰어다니곤 했죠. 고등학교 때는 교내 마라톤대회 우승을 시작 으로 도민체육대회, 나중에는 전국체전에까지 마라톤선수로 출전했어 요. 공무원 생활 중에도 전국 마라톤대회에 빠지지 않고 출전할 만큼 열 성적이었죠. 87년에는 철인3종경기를 시작해 국가대표로 세계대회에 서 우승도 했습니다. 그만큼 운동에는 자신이 있었고, 좋아했어요. 검찰청을 나오고 운동 을 실컷 해보자 싶어 경륜선수로 들어갔죠. 월급도 200만 원 준다고 하 니 돈도 벌 수 있어 좋았고요.” 운동이 좋아 시작한 경륜선수 생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역시 막을 내리고 만다. 애초 보장한다고 했던 월급 200만 원 약속이 지켜지 지 않아 경륜경정운영본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였던 것이다. 결국 운 영본부 쪽에서 다른 선수들의 월급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그의 퇴사 를 종용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법조계 출신 잘못 건드렸다 싶어 본부에서 회유를 한 거였죠. 저는 그만뒀어도 다른 선수들 생계는 보장해 주었으니 미련은 없었습니다. 그 일로 결국 법무사가 되었잖아요.” 그런 풍운아 박명하도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경륜선수를 그만두고 할 일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92년부터 법무사시험에 일반인도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법무사시험에 도전한다. 그리고 95년, 이번에도 전국최고득점 으로 수석 합격을 했다. 경륜선수를 그만둔 시간과 법무사시험에 응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고, 최악의 상태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제 인생의 좌우명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자신감이 가져다주는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50 법무사 시시각각 + 법무사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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