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4월호

눈을 떠보니 어느덧 날이 부옇게 새고 있었다. 잠 깐 졸았나 보다. 끓어오르는 오뎅 국물 수증기 사이 로 어렴풋이 졸고 있는 주인아줌마가 보인다. 옆에 누 군가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희 미하게기억이난다. 저녁모임이끝나고 삼삼오오 떼 지어 3차까지 술자리가 이 어졌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나하 고 정 목사였다. 새벽 두 시쯤이었나.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겠다는 나를 정 목사가 굳이 소 맷자락을 붙잡고 천변 포장마차로 이끌었던 것이다. 내가 기지개를 켜며 두리번거리자 정 목사는 오랜만 에 만났다는 듯이 화드득거리며 비어있는 내 술잔에 허겁지겁 술을 채웠다. 다시금 말상대가 생겨서 기쁜 것이리라. 목사는그의별명이다. 목사님이밤새워술을마실 리는 없다. 그는 기독교 신자였는데 걸쭉하게 술 한잔 마셨다 하면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처럼 읊어대는 말이 있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술잔으로 말이다.” 이로인해그의별명은목사가되었다. 아주오래전 일이었다. 오늘따라희한하게날밤새우며술마시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날, 괜히 심란하여 창가 를 서성거리는데 예스터데이 컬러링이 울렸다. 정 목 사였다. “임 소장, 오늘 벚꽃도 흩날리는데, 술 한잔 어때?” “불감청이나 고소원이지요. 우리동네 포차에서 봅 시다.” 나는 제법 점잔을 빼며 응수했다. 일찍이 조지훈은 「주도유단(酒道有段)」이란 그의 수필에서 술 마시는 것도 품격과 단위가 있다고 설파하며 술 마시는 사람 들의 품계를 18단계로 나눈 바 있다. 정 목사의 품계 입학 초기엔 술도 가끔 마셨는데, 한 일 년 정도 지나자 술을 완전히 끊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살다보면 이처럼 서쪽에서도 해가 뜨는 법이다. 별명이 예언자였을까.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목사안수를 받고 개척교회 목사님이 되었다. 85 법무사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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