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차에 도착하자 벌써 어둑발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임 형, 실은 말야, 내가 지금 형사재판 을 받아야 될 입장이거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다음 말 을 기다렸다. 초조하기는 나도 마찬가지 였다. “얼마 전 도로를 무단횡단 하던 어떤 노인을 내 택시로 쳤거든. 아마 낮 서너 시쯤이었을 거 야. 아직도 그 노인은 병원에 누워 있어. 많이 다쳤지.” 나는 최근에 선고한 대법원 판례가 생각났다. 신문 에도 보도된 사건이었다. “그래, 어떤 도로였나? 시속은?” “왕복 8차선, 편도 4차로였고 빨리 달리지도 않았 네.” 최근에 대법원은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 하던 보행 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하여 무죄를 확정한 바 있다. 이 사건 2심은 “피해자가 왕복 6차로 도로에 차량 이 많은 상태에서 신호변경으로 차량이 출발하는 시 점에 무단횡단을 시작하였고, 택시기사는 이 상황에 서 5개 차로를 넘어 무단횡단 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는 이례적인 사태를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무죄를 선고한 2심판결 에 손을 들어주었다. “최근에 대법원이 최 형과 비슷한 사건에 대 하여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교통사고는 어떠한 상황에 서 어떻게 사고가 난 것인지가 중요하 기 때문에 나도 최 형 사건이 무죄라고 단언할 수는 없네. 하여튼 피해보상에 최선을 다해 보게.” 속 시원한 말은 아니었지만 최 시인 의 얼굴에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번지더 니 그는 앞에 놓인 술잔을 단 한 번에 들이마셨다. “임 형, 시인들의 노래방 애창곡 1위가 어떤 노래인 지 아는가?” 내가 붕어처럼 술만 마시고 있자 그는 갑자기 노래 한 곡조를 뽑았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주인장 황 씨도 활짝 웃으면서 엘피판을 올려놓았 다. 무참하게 봄날은 그렇게 갔다. “얼마 전 도로를 무단횡단 하던 어떤 노인을 내 택시로 쳤거든. 아마 낮 서너 시쯤이었을 거야. 아직도 그 노인은 병원에 누워 있어. 많이 다쳤지.” 나는 최근에 선고한 대법원 판례가 생각났다. 신문에도 보도된 사건이었다. 87 법무사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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