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8월호
지역의 고교인 밀양 밀성고, 밀양 세종고, 밀양공고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35명이나 됐다. 경찰은 가해학생들을 검거한 후 언론에 보도자료 까지냈다. 피해자의신원이드러날수밖에없었다. 당 시 최 양의 어머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 은 마치 한 건 한 것처럼 언론에 모두 공개하고 말았 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딸을 지켜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은 경찰의 보여주기식 수사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경찰의 조사과정도 문제투성이였다. 경찰은 최 양 자매에게 “여경한테 조사받게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역시지키지않았다. 자매는자신이당했던일을남 성 경찰관에게 설명하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수 사를맡은경찰관은최양에게 “니네들이꼬리치며좋 아서 찾아간 것 아니냐”,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밀양 물다흐려놓았다” 등의입에담지못할폭언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해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범인을 지목하게 했다. 경찰 수사기간 동안 아홉 차 례나 불려갔고, 한 번 불려 가면 7~8시간 동안 진술 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최 양은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들로부터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을 받 았다. 사건 담당 경찰관들은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를 불러놓고는 피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와 닮았 네”, “밥맛 떨어진다”는 등의 폭언도 일삼았다. 이런 사실은 동석했던 도우미가 최 양 가족에게 말해주면 서 알려졌다. 경찰의 이러한 행태에 시민단체와 여성단체 등이 크게 반발했다. 경찰은 강력계 수사팀(4명)을 해체하 고, 여경을포함한새로운수사팀을편성했다. 여론이 들끓자 검찰이 개입했고, 특별수사반이 구성되었다.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한 기자는 “사건이 터지고 얼 마 후에 경찰의 진급 심사가 있었다. 경찰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건을 키워서 성과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취재하는동안그런느낌을많이받았다. 또, 당시경찰 의비인권적인수사가문제되면서 8명의경찰관이징 계를받았지만 1년후에는모두복직했다”고말했다. 피해자의끝나지않은고통과상처 최 양의 변호는 강지원 변호사(전 청소년보호위원 장)가 맡았다. 사건이 터지자 강 변호사가 변호를 맡 아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강 변호사 는 흔쾌히 무료 변론에 나섰다. 최 양 자매의 상담 등 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이 도왔다. 강 변호사와 이미경 소장은 경찰 수사 직후 최 양 자매를 서울로 전학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강 변호 사는 “이미 얼굴이 알려지는 등 피해자의 신상이 노 출돼서그지역에서는도저히살수가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서울로 이사를 시켰다”고 말했다. 최 양 자매와 어머니는 2005년 1월에 서울로 온 후 연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치료는 소아 정신과의 신의진 교수가 맡았다. 최 양의 상태는 심각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 로나 피폐해 있었다. 신 교수는 “피해자는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자랐다. 그러다 성폭행을 당하면서 여러 합병증이 심하게 나타났다. 우울증과 애정결핍도 심 했고, 특히부모의이혼으로어머니가집을떠나자엄 마에 대한 원망이 컸다. 가족이 만났다고 다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치료 중에도 ‘죽고 싶다’며 많이 울었 다”고 전했다. 최 양은 한 달 정도 정신과 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 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의 치료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최 양은 “지하철에 뛰어들겠다”는 등 빈번 하게 자살시도를 벌였다. 그러자 극단적인 행동을 염 려한 가족 등이 폐쇄병동에 강제 입원시켰다. 이런 와중에 아버지와 고모, 고모부가 최 양을 찾아갔다. 이들은 최 양에게 피의자들과 합의할 것을 강권했 25 법무사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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