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10월호

가난한 사람의 돈은 훔치지 않는다 조세형(81)은 1938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했다. 태어 난 직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행방불명되었다. 고아가 된 그는 7살이 될 때까지 형의 등에 업혀 구걸 한 젖을 먹고 자랐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형과 헤어 진 후 전국의 보육원을 전전했다. 조세형은 16살 때 남의 깡통을 들고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은수저를 훔치면서 절도의 길에 들어섰다. 소년 기에 각종 범죄를 저질러 무려 20차례나 소년원을 드 나들었다. 성인이 된 후 절도 행각은 더욱 과감해졌다. 드라이버 한 개로 창문을 열고 금고를 따는 신묘한 기 술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훔쳤지만, 나중 에는 훔치기 위해 담장을 넘는 ‘전문 절도범’이 되었다. 그러나 조세형은 다른 절도범들과는 달랐다. 나름 의 ‘절도 철학’이 있었다. 조세형의 ‘절도 5원칙’은 세 간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나라 망신을 시키지 않기 위해 외국인의 집은 털지 않는다, △다른 절도범 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판·검사 집은 들어갔다 가도 그냥 나온다, △연장사용 금지, △가난한 사람의 돈은 훔치지 않는다,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조세형은 푼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보통 의 도둑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하던 고위관료와 부유 층의 안방만을 노렸다. 명륜동, 이화동, 성북동, 서교 동 등 서울의 고급 주택가들이 그의 무대였다. 조세형은 범행 전 최소 1주일 정도는 치밀하게 계획 을 세웠다. 먼저 인근의 산 등 높은 곳에 올라가 망원 경으로 범행 대상을 물색한 뒤 내려와 주소 등을 챙 기고 집주인의 신분을 확인했다. 또 범행 대상 주택에 출입하는 사람이나 시간대, 침입할 지점 등도 체크해 놓았다. 맹견이 있을 경우에는 며칠 전부터 찾아와 휘 파람을 분 후 고깃덩어리를 던져주고 친밀감을 쌓았 을 정도였다.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은 누구인가? 전두환 정권이던 1980년대 초반, ‘조세형’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권력형 부패가 심각하던 당시 부유층이나 고위층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매우 높았다. 훔친 재물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상습 절도범 조세형은 한때 ‘대도(大盜)’라 불릴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80년대 조세형이 고관대작과 부호의 집 담을 넘어 안방 장롱을 활짝 열고, 듣도 보도 못한 귀금속을 들춰내자 서민들은 그를 조선시대의 의적 ‘홍길동’에 비유하며 영웅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세형은 그저 도둑에 불과했다. 자신을 의적으로 추켜세우던 열기에 들떠 ‘대도 행세’를 한 것일 뿐, 개과천선은 하지 못했다. 사회는 조 씨에게 많은 기회를 줬지만 그때마다 제 발로 걷어찼다. 백발이 돼서도 못된 손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감방을 들락거리던 조 씨. 81세가 된 올해 6월, 서울에서 다세대주택을 털다 붙잡혀 16번째 철창신세를 지고 있다. 23 법무사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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