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다는 말에 조세형은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리기 시 작했다. ‘대도’(大盜)라는 별칭도 이때 붙여졌다. ‘큰 도둑’으로 미화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의로운 도둑’으로 회자되자 조세형은 권력자들에게 눈엣가 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경찰은 전국에 비상령을 내 리고 그의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조세형은 1982년 11월 25일, 경찰에 체포된다. 그러나 조세형을 감옥에 집어넣어 의적 이미지를 잠재우려 했던 권력자들의 생각은 크게 빗나갔다. 조 씨가 고관대작의 집에서 훔쳐낸 물건이 공개되면서 오히려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됐다. 세상을 떠들썩하 게 했던 이른바 ‘물방울 다이아몬드 사건’의 서막도 그렇게 올랐다. 조세형이 체포될 당시 장물로 압수한 귀금속은 마 대자루 2개 분량으로 240여 점이나 됐다. 압수품을 늘어놓기 위해 책상이 6개나 필요할 정도였다. 조세 형의 집 금고 2개가 귀금속으로 꽉 차 있었고, 천장을 뜯어보니 서까래 사이가 전부 보석이었다. 이불 속도 빳빳한 현찰로 꽉 차 있었다고 한다. 이들 보석 중 값 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큰 5.75캐럿짜리 물방울 다이 아몬드가 단연 장안의 화재였다. 조세형은 자신의 범행을 술술 털어놨다. 대중의 관 심은 그가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보다 그 물건들을 안 방에 가득 숨기고 있었던 고관대작들의 정체에 있었 다. 그런데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훔친 사람이 있고 훔친 물건도 있는데 도난당했다는 피해자가 나 타나지 않았다. 조세형은 기억을 더듬어 자기가 들어갔던 집들을 가리켰지만, 집주인들은 한사코 “도둑이 들어온 적도 없고, 잃어버린 물건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조세 형이 털었다고 지목한 한 공사 사장은 결코 도난사실 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그런 식 이었다. 물건의 출처가 드러났을 때 뒤따라올 세무조 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확인된 피해자는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 고 이인희 씨, 김준성 부총리, 명륜동의 유명한 부자 김 모 씨, 화장품회사 사장 등이 있었다. 이 중 김 부총리 는 귀금속, 유가증권(주식, 채권, 어음) 등 수억 원 어 치가 털린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전 국민의 이목 이 쏠렸던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무기징역에 보호감호 10년’ 구형되자 탈주극 검찰은 조세형의 절도 금액이 5억 5천만 원 정도라 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금액 이었다. 경찰이 보강수사를 벌여 추가로 유명 보석상 에서 장물 60여 점을 찾아냈지만 이 보석들은 피해 금액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조세형의 검거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이 야기도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조 씨는 곧바로 탈 주를 결심하고 기회를 엿봤다. 1983년 4월 14일,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조 씨에게 무기징역과 보호감호 10 년을 구형했다. 조 씨는 이날 오후 구치감으로 옮겨지 자 탈주계획을 실행한다. 담당 교도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쪽 수갑과 포승줄을 풀고, 환풍기를 뜯 어 탈주하는 데 성공한다. 조 씨는 다시 언론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탈주한 조 세형은 서울역, 후암동, 장충동 등 도심 일대를 활보 하다 5차례나 주택에 몰래 침입해 음식과 현금, 옷가 지를 훔쳤다. 1983년 4월 19일 오전 10시경, 서울 장 충동 주택가 골목을 지나던 한 시민이 조세형을 발견 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이 출동하자 조 씨는 주택 의 지붕을 타며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경찰이 장충동 일대에 포위망을 쳐놓고 수색범위 을 좁혀가자 조세형은 더 이상의 도주가 힘들다고 판 단했는지 한 가정집의 화장실 유리창을 깨고 침입, 집 24 법으로 본 세상 + 사건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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