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법무사 2월호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운 쇳소리에 김 법무사는 “아니야, 난 죄가 없어!”라고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허우적거리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뒤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직도 자신의 몸이 깊은 블랙홀로 빨려 들 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이 들었 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그는 K시에 있는 자신의 집 이 아닌 낯선 방에 와 있음을 직감했다. 심한 갈증을 느낀 그는 물부터 찾았다. 냉장고에서 500밀리 생 수 한 병을 꺼내들고 단숨에 병째로 나발을 불었다. 간밤의 숙취 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뒷골이 빠개지도록 머리가 띵했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이 법무사로부터 ‘부재중 전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기억의 회로를 거꾸로 돌려 나가다 보니 어젯밤 술집에서 같 이 술을 마시던 이 법무사의 호탕한 웃음소리에서 시간은 멈추 었던 것 같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제저녁 수산대 학교 동기모임 후 이 법무사와 따로 2차 를 간 기억만 생생할 뿐 그 뒤의 필름은 끊겨 있었다. 오랜 기간 알코올에 대한 내성을 내공 으로 단련한 이 법무사 앞에서 맘먹고 대 작하다니, 그건 자신의 음주량을 과대평 가한 그의 만용이고 불찰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지 한참이 되었지만 여전히 꿈속 에서 본 용궁의 세계가 마치 눈앞에 현 실로 펼쳐진 것처럼 너무도 생생히 떠올 랐다. 용궁 안의 법정도 법복의 색상만 다 를 뿐, 세상 것과 별반 다르지 않 았다. 법대 중앙에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 을 정도로 광채가 빛나는 황금색 법복을 입고 머리는 인간의 모습을, 꼬리는 물고 기의 형상을 닮은 용왕 재판장이 근엄하 조춘기 법무사(경남회)·본지 편집위원 콩트 용궁 재판 80 문화가 있는 삶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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