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좌정해 있었다. 좌배석에는 수염을 멋지게 기른 거대한 바다메기가, 우배석에는 어마어마한 풍채 의 귀신고래가 역시 황금색 법복을 입고, 높은 법대 위에서 피고인석에 있던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동피고인석 그의 옆에는 원양어선 청 운호가 남태평양에서 투하한 주낙에 아 가미가 걸려 최초로 잡혔던 그 참치가 고 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는 힐끔 옆자리의 참치를 바라보았다. 한때는 내 목숨을 태평양에 담보로 맡기면서까지 너를 일본이나 한국의 식탁으로 데려가 려 했었는데, 어쩌다 우린 이렇게 포승줄 에 묶인 죄수로 전락했나 하는 자괴감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몸을 짓눌렀다. 용왕 재판장이 그에게 이름과 직업을 물었을 때, 그는 잠시 호흡을 고르며 선원 이라고 해야 하나, 법무사라고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며칠 전에 법무사를 휴업하 고 배를 탄 김 선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방청석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 기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평소 식탁에 자주 오르던 삼치, 방어, 고등어, 갈치, 우 럭, 도미, 볼락, 광어, 가오리… 등 낯익은 녀석들의 얼굴도 보였다. 사실 그는 법무사가 되리라 마음먹기 몇 년 전에는 수산대학교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 원양어선 선원이었다. 마 도로스였던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법무 사인 친구가 건네준 한 권의 『법무사』였 다. 그보다 5년 먼저 법무사가 된 이 법무사는 수산대학교 동기 동창으로 졸업한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전공과 무관한 법무사가 된 친구였다. 처음 접한 『법무사』지의 영향이 비록 격화소양 격이요, 장님 코 끼리 만지듯 하는 격이었지만, 법무사의 업무영역을 본 그는 자신 도 모르게 법무사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점점 법 무사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 보람 있는 직업이 아 닌가 하는 확신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2년간의 해상생활을 미련 없이 청산하고, 서울의 유 수 학원에 등록한 후 죽기 살기로 3년간 법무사시험에 매달린 끝 에 운 좋게 합격하여 고향인 K시에서 ‘법무사’라는 새로운 인생 제2막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꿈에 부푼 그에게 예상보다 빨리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 다. 개업을 하면서 그는 처음 법무사에 도전할 때의 그 꿈과 열정 을 담은 초심을 잊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래서 개업할 때는 여직원 1명만 둔 미약한 시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본직이 매사에 열정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거래 처를 확보하며 차츰 사세가 확장되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는 말처럼 슬슬 과욕과 과시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하 여 개업 5년 만에 노련한 사무장을 포함, 2명의 직원을 추가로 영 입했다. 처음에는 그의 복안대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듯했다. 사 무실이 그럴듯하게 잘 돌아가자 어느 순간부터 그는 초심을 잃어 버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지명도가 올라가고 주위에서 손짓하는 일이 많아지자 그는 슬슬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주중임에도 매주 한 번은 고교동창 내지는 거래처 사 람들과 골프회동을 갖기도 했고, 무슨 핑곗거리를 만들어서라도 툭하면 저녁 술판을 벌였다. 그게 화근의 시초였다. 가랑비에 옷 젖듯 지출은 조금씩 늘어 가는 데 비해 경기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 지기 시작했고, 믿었던 사무장마저 도박에 빠져 대납하려고 보관 중이던 아파트집단등기 취·등록세 5억여 원을 들고 잠적하는 바 람에 그 뒤치다꺼리까지 하는 등 안팎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요인들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닥치자, 그는 이런 것들을 극복하 81 법무사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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