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법무사 2월호
게 좌정해 있었다. 좌배석에는수염을멋지게기른거대한 바다메기가, 우배석에는어마어마한풍채 의 귀신고래가 역시 황금색 법복을 입고, 높은 법대 위에서 피고인석에 있던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동피고인석그의옆에는원양어선청 운호가 남태평양에서 투하한 주낙에 아 가미가 걸려 최초로 잡혔던 그 참치가 고 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는 힐끔 옆자리의 참치를 바라보았다. 한때는 내 목숨을 태평양에 담보로 맡기면서까지 너를 일본이나 한국의 식탁으로 데려가 려 했었는데, 어쩌다 우린 이렇게 포승줄 에 묶인 죄수로 전락했나 하는 자괴감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몸을 짓눌렀다. 용왕 재판장이 그에게 이름과 직업을 물었을때, 그는잠시호흡을고르며선원 이라고 해야 하나, 법무사라고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며칠 전에 법무사를 휴업하 고배를탄김선원입니다.”라고대답했다. 갑자기방청석이웅성거렸다. 힐끔뒤를 돌아보니 방청석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 기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평소 식탁에 자주 오르던 삼치, 방어, 고등어, 갈치, 우 럭, 도미, 볼락, 광어, 가오리… 등 낯익은 녀석들의 얼굴도 보였다. 사실 그는 법무사가 되리라 마음먹기 몇 년 전에는 수산대학교를 갓 졸업한신출내기원양어선선원이었다. 마 도로스였던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법무 사인 친구가 건네준 한 권의 『법무사』였 다. 그보다 5년 먼저 법무사가 된 이 법무사는 수산대학교 동기 동창으로 졸업한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전공과 무관한 법무사가 된 친구였다. 처음접한 『법무사』지의영향이비록격화소양격이요, 장님코 끼리만지듯하는격이었지만, 법무사의업무영역을본그는자신 도 모르게 법무사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점점 법 무사야말로진정으로자신의인생을걸만한보람있는직업이아 닌가 하는 확신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2년간의 해상생활을 미련 없이 청산하고, 서울의 유 수 학원에 등록한 후 죽기 살기로 3년간 법무사시험에 매달린 끝 에 운 좋게 합격하여 고향인 K시에서 ‘법무사’라는 새로운 인생 제2막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꿈에부푼그에게예상보다빨리가혹한시련이찾아왔 다. 개업을 하면서 그는 처음 법무사에 도전할 때의 그 꿈과 열정 을담은초심을잊지말자고스스로에게다짐했다. 그래서개업할 때는 여직원 1명만 둔 미약한 시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본직이 매사에 열정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거래 처를 확보하며 차츰 사세가 확장되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는 말처럼 슬슬 과욕과 과시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하 여 개업 5년 만에 노련한 사무장을 포함, 2명의 직원을 추가로 영 입했다. 처음에는 그의 복안대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듯했다. 사 무실이 그럴듯하게 잘 돌아가자 어느 순간부터 그는 초심을 잃어 버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지명도가 올라가고 주위에서 손짓하는 일이많아지자그는슬슬직원들에게일을맡기고밖으로나돌기 시작했다. 주중임에도 매주 한 번은 고교동창 내지는 거래처 사 람들과 골프회동을 갖기도 했고, 무슨 핑곗거리를 만들어서라도 툭하면 저녁 술판을 벌였다. 그게 화근의 시초였다. 가랑비에 옷 젖듯 지출은 조금씩 늘어 가는 데 비해 경기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 지기시작했고, 믿었던사무장마저도박에빠져대납하려고보관 중이던 아파트집단등기 취·등록세 5억여 원을 들고 잠적하는 바 람에 그 뒤치다꺼리까지 하는 등 안팎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요인들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닥치자, 그는 이런 것들을 극복하 81 법무사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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