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공판기일이 속행된 후 마지 막 공판기일 때 검사는 참 치와 피고인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하였고, 국선변호인 바다거북은 참치와 피고인이 초범이고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으니 이번에 한해 선처 바란다는 다소 상투적 인 변론으로 그의 소임을 마무리하였다. 마지막으로 피고인 김 선원은 최후진술 을 통해 휴직 법무사로서 해저 심해 용왕 국의 존재와 법에 무지했던 점을 깊이 반 성하며, 돌아가면 조상 대대로부터 관습 적으로 참치회 등 생선을 선호하는 사람 들에게 용왕국의 실상을 알릴 터이니 부 디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또한 앞으로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본 직확인 등 본직이 직접 몸으로 뛰어다니 며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법무사의 본업을 수행할 것이며, 존경과 신뢰받는 국민 친 화적인 법률가로서 국가와 사회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법무사로 거듭나겠다고 이 번 한 번만 선처해 달라며 눈물로써 호소 했다. (후략) 그러나 재판부도 방청객 어느 누구도 그들의 진술에 썩 귀를 기울이는 것 같 지는 않았다. 드디어 판결 선고기일이 되었다. 용왕은 판결초고를 펼치더니 굳은 표정으로 판결 문을 읽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 잘 정제 된 판결이유를 거쳐 판결주문이 낭독되 는 법정 안은 일순 쥐죽은 듯 고요했다. “참치는 평생 태평양 심해 감옥에 가두 는 종신형에 처하고, 피고인 김 선원은 사 형에 처한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씻어내듯 샤워를 마친 그는 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고도 한참을 모텔에 앉아 생각에 잠 겼다. K시로 가는 버스출발시간은 아직 2시간이나 여유가 있었다. 그는 모텔을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의 영도다리 밑 부둣가에 있 는 벤치에 앉았다. 놓여있는 벤치 몇 군데에는 아직도 노숙자들 이 낮잠에 취해 모로 누워 있었다. 그때 바람에 실려 “싱싱한 고등어 사이소, 싱싱한 고등어.” 아 슴하게 먼 곳에서 자갈치 아지매들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싶더니 이내 부두에 철썩거리는 파도가 하나씩 그 소리를 물고 물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이 법무사에게 전화를 했다. 대 기음이 흐르는 그 수초의 찰나가 용궁 법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마치 방금 전 눈앞에서 벌어졌던 일처럼 다시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이, 김 법무사, 일어났나.” “근데 이 법무사, 어젯밤 내가 무슨 소리 하더노.” 그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하긴, 억수로 취했제. 기억도 못 하는 거 보니. 초심으로 돌아 가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고 안 그랬나.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트렸다면서….” 그가 전화를 끊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며 칠 전 친부 아닌 사람이 가족관계등록부에 친부로 기재되어 있다 며 사무실을 찾았던 의뢰인이었다. “법무사님, 말씀하신 서류 다 떼었으니 내일 오전에 들르겠습 니다.”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장을 어떻게 작성할까 하는 생각을 하 면서, 그는 천천히 택시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83 법무사 2020년 2월호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