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병원 김병학 본지 편집위원 십여 년 전 나는 수도권 소재 지방법원의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인사이동으로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팔십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 다. 그분은 고향에 계시는 나의 노모와 친분관계를 강조하 면서 두서없이 말씀하셨는데 “법의 도움이 전혀 없이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착한 자신 의 남편이 너무도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국장 님은 원장님과 친분이 있을 테니 원장님께 잘 부탁드려 서 목숨만은 살려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하신다. 나는 법원에서 원장님은 개개의 사건에 관여하지도 않 고 관여할 수도 없으며, 또 사형선고의 판결이 확정되면 누구에게 부탁하여도 사형선고는 취소될 수 없음을 열 심히 설명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눈으로 날 쳐다보더 니 약 보름 전 남편은 간암으로 모 대학병원에서 2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고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마지막 으로 수술이나 받아 볼 수 있도록 그 대학병원장님께 잘 부탁드려서 수술날짜를 빨리 잡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이라고 부연 설명을 하신다. 그때서야 나는 법원에서뿐만 아니라, 병원에서도 사형 선고가 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양쪽 기관의 장도 공통적으로 모두가 원장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도 새 삼 인식하게 되었다. 그 일은 나에게 법원과 병원의 공통점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양 기관 모두가 합법적인 감금이 가능 하다는 점, 이른바 ‘사’자 직업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 게 오르내리는 점도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위 두 개의 기관이 모두 병을 치료하는 사명을 가진 기관이라는 점이다. 우리 몸 에 대한 질병의 치료는 물론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이겠지 만, 잘못된 범죄의식이나 무책임한 사회질서, 그리고 불 합리한 관행 등으로 병들어 버린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치료는 법원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L E T T E R E D I T O R’S 98 편집위원회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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