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법무사 10월호

L E T T E R E D I T O R’ S 어느 평범한 하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여름,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달궈진 아스팔트가 세상을 온통 습식 사우나로 만들던 날. 치솟는 불쾌지 수와는 달리 나는 기분이 좋았다. 걱정하던 미국인 관련 소유권이전등기가 보정없이 교합되었고, 유 체동산 집행절차에 착수했던 사건이 채무자의 자발적인 채무이행 으로 종결처리가 되었다. 점심도 두둑이 잘 먹고 새로운 사건도 하 나 수임한 터였다. 그런 행운의 날 오후 4시경, 한 의뢰인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좋은 인상을 가진 그는 오래된 채권에 대해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 기하고 싶다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소멸시효 완성에 대한 지 식을 나열하면서 자신의 말대로만 진행하면 된다며 기분이 좋은 듯 웃음 지었다. 하지만 “채권성립후십수년이지났고, 그동안특별한채권이행에 대한최고등의정황도없었기때문에승소가능성이있다”는그의 말과는 달리 의뢰인 소유의 부동산에는 이미 대상 채권을 원인으 로 한 가압류가 되어 있었다. “안타깝지만채권의소멸시효가중단된상태이기때문에채무부존 재확인의 소를 제기한다 하더라도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설명을들은의뢰인은당황해하다가갑자기그럴리가없다며격분 을 했다. 나는 되도록 차분하게 소멸시효 중단에 대한 「민법」 조문 과 관련 판례를 제시하며 그의 이해를 도우려 했지만, 흥분한 그는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법도 잘 모르는 법무사 가 되었고, 얼마 후 그는 냉소를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다. 대체무슨일이일어난것인가. 당혹감과허탈함에몸부림치다가퇴 근할 시간이 되어 우울하게 사무실을 나왔다가 우연히 친한 선배 법무사를 만났다. 선배를 붙들고 오후의 일을 하소연했다. “정말 자괴감을 느낍니다. 전문가의 말보다 인터넷이 더 설득력이 있다니요? 더구나 사실관계도 다른 데 말입니다. 일반인을 이해 못 시킨 제가 실력이 없는 걸까요? 혼란스럽네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가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표현이 그렇지만 나도 가끔 당하는 일이야. 의뢰인이 답을 정하고 오면어쩔수가없어. 그런거더라고, 우리일이. 그래도이법무사는 운이 좋네, 오늘 처음 있는 일이었나 봐?’ 그랬다. 나는 법무사로서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낸 것이었다. 이경록 법무사(강원회)·본지편집위원 98 편집위원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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