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법무사 11월호

의뢰인과의 만남과 사건의 개요 필자는 다니던 교회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하던 중 한 80대 실향민 어르신(의뢰인)으로부터 호적상 본 (本)이 잘못되어 자녀들에게 불편하다는 원망을 듣고 있다며, 죽기 전에 잘못된 호적을 바로잡는 것이 소원 이라는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의뢰인은 1932년 황해도 해주에서 일곱 번째 외아 들로 태어났는데, 1945년 해방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어 집안의 모든 재산이 몰수당해 어렵게 살다 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학도의 용군에 입대했고, 그길로 가족들에게 말 한마디 전하 지 못한 채 홀로 남하했다고 한다. 남하한 의뢰인은 1952년 남한 공군에 입대하여 복 무하던 중 1953.7.27. 휴전을 맞았으나 분단이 되면서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 혼자 남한에서 살 게 되었다. 의뢰인이 가호적2)을 갖게 된 이유는 해방 후 남한을 통치하게 된 미군정의 조치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북위 38도 이북에 본적을 두 고 있으나 현재는 북위 38도 이남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호적의 임시적인 조치로서 1948.4.1. 군정법령 제179호로 「호적의 임시조치에 관 한 규정」3)을 제정하고, 이에 근거해 월남한 사람들에 게 현재 거주지를 본적지로 정하여 호적을 취적 신고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뢰인도 이에 따라 27세 되던 해인 1959년에 취적 신고를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의뢰인의 착각으로 본 관을 부친의 본관인 “은진(恩津)”이 아니라 어머니의 본관인 “전주(全州)”로 잘못 신고한 것이었다. 의뢰인은 이 사실을 기억에서 잊고 있다가 1964년 경 결혼으로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남쪽에서 기적 적으로 만난 12살 위 누님이 자신과 의뢰인의 본관이 달라 친남매가 남처럼 되어 있다며 의문을 제기해 호 적을 대조해 보게 되면서 자신의 착오를 알게 되었다. 당시 누님의 호적에는 부모의 성명이 한문과 한글 로 정확히 기재되어 있었으나 의뢰인의 호적에는 부 친 이름만 제대로 등재되었고, 모친은 이름이 ‘李○ 顯’인데, ‘李○年’으로 다르게 기재되어 있었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자신이 ‘본’과 모친의 성명을 착 오 기재한 것 같았다. 전쟁과 피난 등으로 경황이 없 는 상황에서 가호적을 만들다 보니 아마도 모친 성명 의 정확한 한문을 기억하지 못해 다른 한자로 잘못 적 은 모양이었다. 의뢰인은 가호적을 취적 신고할 당시 군인의 신분이 었고, 어린 나이에 호적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부족 한 상태여서 본관과 모친 이름을 착오 기재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잡기 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정정을 포기한 채 지금까 지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아들이 회사에서 승진해 “가문의 영 광”이라고 축하의 덕담을 했더니, 살면서 한 번도 호 적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던 아들이 갑자기 “아버지, 가문의 영광이라고요? 가문부터 고쳐주세요”라고 해 서 큰 충격을 받았고, 반드시 바로잡아야겠다고 결심 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뢰인의 본(本)을 정정하기 위한 법규의 검토 의뢰인의 사연을 모두 들은 필자는 죽기 전에 호적 2) 현재는 가호적에 의해 호적이 편제되고, 그 호적사항이 가족관계등록부로 재 편제되었다. 3) 1948.4.1. 제정된 「호적의 임시조치에 관한 규정」은 의뢰인이 가호적을 신고한 후인 1960.1.1., 같은 명칭의 법률(제535호)이 제정되면서 폐지되었다. 그러나 원 규 정에서는 1922.12. 「조선호적령」(총독부령 제154호) 제11조 및 1923.3. 「조선호적령 시행수속」(총독훈령 제15호) 제29조에 의해 작성토록 되어 있었다. 59 법무사 2020년 11월호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