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법무사 11월호
추기경님께서도 본 묘원에 영면하셨다는 자랑을 곁들이면서 선 전 겸 안내를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뭐 벌써부터 이런 일에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하 고 머뭇거리자 묘지 관리인의 말이 걸작이었다. ‘어르신! 신후지 지를미리잡아놓으면대부분장수하신다’면서은근히매수하기 를부추기었다. 그래서한편으로는기분이나쁘지만다른면으로 보면 내친김에 한 평쯤 마련하는 것도 괜찮을 성싶어 눈을 딱 감 고 계약을 하였다. 이런연유로필자는신후지지를장만하게되었다. 세상모든만 물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애착을 갖게 되어 죽어서도 조 상의 선영 발치에 묻히는 게 보통의 일일 거다. 그래서 수구초심 (首丘初心)이란 말도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요즘은시대가변하여사후에, 매장보다는 화장률이훨 씬많고소위풍수지리에의한길지(吉地)가거의없어매장을잘 못하면 화장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매장으로 인한 국 토의 훼손관리에도 일조하는 셈이고, 사회 저명인사들 중에도 화장을 손수 실천한 분들도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 겠는가? 또한, 세세연년돌아오는각종명절에교통이막혀조상님께성 묘하기가 어려우니 주거지에서 가까운 곳에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도 권장할 일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선대 조상님들께서 서운해하실지 모르나 아들의 권유로 시골의 선영 대신 공원묘원을 나 자신의 신후지지로 정하게 되었다. 요절과천수, 누가인간의생사를좌우할까 이쯤해서우리인간의사욕(私慾)이어디까지미칠까도생각해 보았다. 영생(永生)을 꿈꾸며 선남선녀를 시켜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던 진시황도 50대에 갔다고 알고 있다. 옛날부터 무병장수 (無病長壽)는 인간의 소망이자 최고 욕심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필자도 묘원관리인의 장수멘트가 귀에 쏙 들어왔다. 지난추석명절에시간여유가있어그동안잡아놓은신후지지 가궁금하여집사람과같이신후지지에가보았다. 관리자측에서 잔디를 잘 다듬어 놓았고, 금년처럼 대홍 수가 졌는데도 어디 하나 빗물의 흔적이 없는 것을 보니 관리는 잘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좀마음이아픈것은, 바로옆묘 지에벌써새입주자가있고꽃이놓여있 었는데, 손바닥만 한 세로로 새긴 비명을 보니 “1961年生 2017年卒”이라새겨져있 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왜 이리도 먼저 왔는지? 그리고 두 칸 너머 비명을 보니 “1932年生 2018年卒”이라 새겨 있었다. 두분을비교해보니한분은천수를다 한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요절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였다. 속담에 핑계 없는 무 덤이 없다고 했는데 어느 누가 인간의 생 사를 좌우할까! 각종 종교의 교리와 신앙 의 깊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생의 길흉 화복(吉凶禍福)과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 자신의 영역은 아니란 사실에 숙연 해진다. 다만, 자연에 순응하며 선한 마음으로 순리대로살아가되, 옛선현이갈파한, “지 족자 빈천역락(知足者 貧賤亦樂)이요, 부 지족자 부귀역우(不知足者 富貴亦憂)라, 만족함을 알면 빈곤하고 천해도 또한 기 쁘고, 만족함을 모르면 부귀를 손에 쥐어 도 또한 괴롭다”라는 명언을 마음에 새기 며살아가다보면하늘이주신천수(天壽) 를누릴수있지않을까생각해보았다. 바라옵건대 신후지지의 입주금이 요즘 서울 아파트 값처럼 천정부지로 오르는 한이 있더라도 아주 늦게 입주시켜 달라 고하느님께바란다면과도한욕심이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신후지지를 마련한 후 방문 소감을 피력해 본다. 81 법무사 2020년 11월호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