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서도 본 묘원에 영면하셨다는 자랑을 곁들이면서 선 전 겸 안내를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뭐 벌써부터 이런 일에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하 고 머뭇거리자 묘지 관리인의 말이 걸작이었다. ‘어르신! 신후지 지를 미리 잡아 놓으면 대부분 장수하신다’면서 은근히 매수하기 를 부추기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내친김에 한 평쯤 마련하는 것도 괜찮을 성싶어 눈을 딱 감 고 계약을 하였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신후지지를 장만하게 되었다. 세상 모든 만 물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애착을 갖게 되어 죽어서도 조 상의 선영 발치에 묻히는 게 보통의 일일 거다. 그래서 수구초심 (首丘初心)이란 말도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변하여 사후에, 매장보다는 화장률이 훨 씬 많고 소위 풍수지리에 의한 길지(吉地)가 거의 없어 매장을 잘 못하면 화장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매장으로 인한 국 토의 훼손관리에도 일조하는 셈이고, 사회 저명인사들 중에도 화장을 손수 실천한 분들도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 겠는가? 또한, 세세연년 돌아오는 각종 명절에 교통이 막혀 조상님께 성 묘하기가 어려우니 주거지에서 가까운 곳에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도 권장할 일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선대 조상님들께서 서운해하실지 모르나 아들의 권유로 시골의 선영 대신 공원묘원을 나 자신의 신후지지로 정하게 되었다. 요절과 천수, 누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할까 이쯤해서 우리 인간의 사욕(私慾)이 어디까지 미칠까도 생각해 보았다. 영생(永生)을 꿈꾸며 선남선녀를 시켜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던 진시황도 50대에 갔다고 알고 있다. 옛날부터 무병장수 (無病長壽)는 인간의 소망이자 최고 욕심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필자도 묘원관리인의 장수멘트가 귀에 쏙 들어왔다. 지난 추석 명절에 시간 여유가 있어 그동안 잡아놓은 신후지지 가 궁금하여 집사람과 같이 신후지지에 가보았다. 관리자 측에서 잔디를 잘 다듬어 놓았고, 금년처럼 대홍 수가 졌는데도 어디 하나 빗물의 흔적이 없는 것을 보니 관리는 잘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좀 마음이 아픈 것은, 바로 옆 묘 지에 벌써 새 입주자가 있고 꽃이 놓여 있 었는데, 손바닥만 한 세로로 새긴 비명을 보니 “1961年生 2017年卒”이라 새겨져 있 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왜 이리도 먼저 왔는지? 그리고 두 칸 너머 비명을 보니 “1932年生 2018年卒”이라 새겨 있었다. 두 분을 비교해 보니 한 분은 천수를 다 한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요절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였다. 속담에 핑계 없는 무 덤이 없다고 했는데 어느 누가 인간의 생 사를 좌우할까! 각종 종교의 교리와 신앙 의 깊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생의 길흉 화복(吉凶禍福)과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 자신의 영역은 아니란 사실에 숙연 해진다. 다만, 자연에 순응하며 선한 마음으로 순리대로 살아가되, 옛 선현이 갈파한, “지 족자 빈천역락(知足者 貧賤亦樂)이요, 부 지족자 부귀역우(不知足者 富貴亦憂)라, 만족함을 알면 빈곤하고 천해도 또한 기 쁘고, 만족함을 모르면 부귀를 손에 쥐어 도 또한 괴롭다”라는 명언을 마음에 새기 며 살아가다 보면 하늘이 주신 천수(天壽) 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바라옵건대 신후지지의 입주금이 요즘 서울 아파트 값처럼 천정부지로 오르는 한이 있더라도 아주 늦게 입주시켜 달라 고 하느님께 바란다면 과도한 욕심이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신후지지를 마련한 후 방문 소감을 피력해 본다. 81 법무사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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