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글에서 입법과 사회운동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회운동과 구분되는 입법의 가장 큰 차이 점은 ‘51%’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회운동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소신을 실천하면 된다. 캠페인을 통한 동조자 확대,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또한, 어떤 사안의 옳고 그름이 반드시 쪽수로 환 원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소수의견이지만 역사적 실 천이 쌓이고 쌓여 먼 훗날 다수파가 되는 경우도 많다. 흑인 노예해방, 노동자 참정권, 여성 참정권, 흑인의 선거 권·피선거권, 제3세계 식민지의 독립, 8시간 노동제가 모 두 그랬다. 다만, 입법은 51% 이상이 동의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여기서 ‘51%’는 물론 국회의원 숫자를 의미한다. 다만 국회의원은 의사결정에 있어 여론의 눈치를 생각보 다 중히 여긴다. 선거가 다가오면 여론이 ‘투표용지’로 바 뀐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51%의 의미를 국민적 지지율을 포함해 광의(廣義)의 개념으로 사용해 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입법과 사회운동의 차이점을 잘 보 여주는 사례는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의 좌절이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의 좌절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 을 준다. 2004년 총선, 민주화세력의 행정부·입법부 동시 장악 2004년 국가보안법 입법 실패를 살펴보기 위해서 는 당시 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사 에서 2004년 4월 총선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민주화 운동 세력이 최초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선거였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통해 처음으로 행정부를 잡게 됐다. 그러 나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씨와 정치연합을 통해 당선됐 다. 이를 흔히 ‘DJP 연합’이라 표현한다. 김종필 씨는 1961 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5·16 쿠데타에 참여한 사람이다. 이념적 성향은 보수다. DJP 연합은 1997년 대선 승 리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개혁에는 한계로 작용했다. 개 혁성향 지지층이 ‘왜 개혁을 화끈하게 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면, 김대중 정부는 김종필 총재의 보수 성향을 핑 계로 댈 수 있었다. 실제로 일리 있는 핑계였다. 2002년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러나 국회(입법부)는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 당이 과반 의석이었다. 역시 지지층이 개혁을 요구하면, ‘국회의 반대 때문에’ 개혁입법이 쉽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 역시 일리 있는 핑계였다. 한국 정치에서 입법과 사회운동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입법의 실패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갈등과 입법의 최종적인 좌절을 통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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