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2월호

흘러온 물 위에는 토파가 놓여있다. 방한모를 쓰고 두꺼운 흰색 솜옷으로 무장한 선비는 나귀를 타고 눈 내리는 대자연에 심취한다. 시동이 어깨에 걸친 긴 막대에는 두 개의 보따 리와 거문고가 매여 있다. 보따리 안에는 술과 차, 책이 들어 있을 것이다. 단단히 갖춘 걸 보니 먼 길 을 갈 태세다. 중경에는 잘생긴 소나무에 눈꽃이 피 었고, 먼 산봉우리는 첩첩산중이다. 눈은 세상을 덮 고 있다. 소용돌이 모양의 바위와 언덕은 짙은 먹 선으로 그렸고, 흰색의 눈은 담묵으로 처리했다. 짙은 먹으로 수초를, 담묵으로 계곡물을 넓게 표현했다. 언덕 앞에 우뚝 솟은 휘어진 나무는 강한 필선으로 체형이 멋 스럽다. 계곡 사이로 높게 올린 토파의 지지대는 짙은 먹 선으로 단단하다. 나귀를 탄 선비와 시동은 토파를 건너는 중이 다. 잔설이 쌓인 나무와 소나무는 설경의 운치를 돋 운다. 경물의 운필과 농담이 눈과 대비를 이루어 흑 백의 조화를 연출한다. 활달하고 분방한 필선이 남 종문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화면 상단 오른편에 ‘파교심매(灞橋尋梅)’라는 화제(畫題)와 1766년 초 여름(‘병술초하丙戌初夏’)에 그렸다는 관지가 있다. 화가이자 비평가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심사정의 그림을 보고 “그는 그림 분야 에서 못하는 것이 없지만, 화훼와 초충을 가장 잘하 였고, 그다음이 영모, 그다음이 산수이다”라는 평을 남겼다. 심사정의 묘비명에 “하루도 그림을 그리지 않 은 날이 없었다”라고 적혀 있듯이, 그림은 시린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긴 한파에 폭설이 내렸다. 근심스럽게 화초들 의 안색을 살핀다. 어쩔 수 없이 난초의 꽃대가 얼까 봐 거실에 들여놓는다. 천리향 나무의 깨알 같은 꽃 봉오리도 걱정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생명을 품는 화초는 그들만의 생존 노하우가 있다. 「파교심매도」 의 선비가 되어 화초를 바라본다. 추위가 매서울수 록 매화의 향기는 깊다. 사람도 그렇다. 심사정, 「파교심매도」, 비단에 엷은 채색, 115×50.5cm, 1766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83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