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3월호
를 졸업하고,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그때 인상주의를 접하고 돌아온 그는 1935년부터 1944년까 지 개성에서 송도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 생활을 한다. 여유가 생기자 인상주의풍의 작업에 몰두하고, 만 주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힌다. 해방 후에는 서울에서 3 년여 동안 활동하다가 1947년경 광주로 귀향한다. 7년여 간 조선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치며 척박한 서양화단 을 일궜다. 오지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을 겪으며 화가로서도 가혹한 시절을 보냈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귀향한 그는 “토굴과도 같은 껌껌한 이 방 안에서 봄이 오기만을 안타깝게 기다렸던 내 어리석음을 내가 겨울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자라난 이들 싹들을 보면 서 생각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이것은 내게 있어 하 나의 숙명적인 기원이요, 동경인 것이다. (중략) 오랜 항 해로부터 돌아온 뱃사람처럼, 나는 지금 이 산골짜기의 아늑하고 따뜻한 그 정에 온몸이 포근히 잠기는 것을 느 낀다.”(『호남신문』, 1953.1. 일자 미상)고 했다. 전쟁은 참혹한 상처를 남겼지만 고향의 품에서 그 는 우리의 정서를 담은 인상주의 화풍을 펼치는 데 전력 한다. 「남향집」은 한국적 인상주의를 정립한 오지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싹튼 인상주의는 화 실을 박차고 나간 화가들이 야외에서 직접 본 풍경을 그 린 것이다. 이전의 화가들이 어둠침침한 화실에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인상주의자들은 자연과 교감하며 시 시각각 변하는 빛의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형태의 사실감을 표현하는 대신 색의 환희를 얻었다. 그들에게 빛은 곧 색이었고, 색은 또 빛이었다. 봄볕의정감살린, 오지호식인상주의의정수 「남향집」은 지난 시절 우리네 고향집을 연상시킨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감을 주렁 주렁 매달았던 나무는 잎을 떨궈 빈 가지로 서 있다. 토 방에는 봄볕을 받으며 흰둥이가 평온하게 잠들었다. 우람한 고목이 흙벽에 그림자를 드리워 마치 나무 가 두 그루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문을 열고 밖으 로 나오는 소녀의 손에는 그릇이 들려 있다. 붉은색 원 피스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 수줍어 보인다. 초가지붕 위 에까지 걸쳐진 나무 그림자는 따스한 봄볕의 정취에 추 임새를 더한다. 회색의 돌계단 위 토방은 마당과 집 안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뜰에 심어진 나무는 세월이 흘러 주인과 같이 나이를 먹으며, 여름에는 녹색 잎으로 시원함을 안 겨주고,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잎으로 추억에 물들게 한 다. 또 겨울에는 나목이 되어 집에 햇살을 양보하여 따 듯함을 선사한다. 고목의 그림자는 남색과 보라색을 섞 어 푸른 계열로 빚었다. 그 색감이 겨울의 쾌청한 하늘 과 통한다. 황토색과 주황색이 겹쳐진 돌담에는 밝고 명 랑한 기운이 가득하다. 붉은 원피스 차림의 소녀는 흰둥 이에게 밥을 주려고 나오는 중이다. 졸고 있는 흰둥이는 나른한 봄의 기운을 실감 나게 한다. 이 작품은 많은 색상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봄볕의 정감을 최대한 살려, 오지호식 인상주의의 진수를 보여 준다. 오지호는 이렇게 인상주의 화풍으로 한국 근대회 화에 큰 자취를 남겼다. 비평가 석도륜은 “인상화파의 정통적인 계승자며, 그것의 토착화를 위하여 깊게 꾸준 한 일을 해왔던” 화가로 오지호를 평했다. 「남향집」에 클로즈업된 초가집은 오지호가 해방 전해까지 살았던 개성의 집이다. 흰색 칼라에 붉은색 원 피스를 입은 소녀는 둘째딸인 금희다. 흰둥이는 그가 아 끼던 ‘삽살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다. 이 남향의 집이 따 스한 것은 자신의 집과 사랑하는 딸과 삽살이가 어우러 진 최고의 순간을 스냅사진처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햇살을 받으며 산책에 나선다. 순간, 동행중인 내 그림자를 본다. 오늘따라 무채색의 건강한 그림자가 싫 지만은 않다. 햇살은 사물을 비추며 흔적을 남긴다. 「남 향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고목은 오랜 동안 초가집과 함 께한 세월의 그림자를 나누며 장승처럼 서 있다. 하루에 한 번은 그림자를 살피며 자신을 반추하는 봄이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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