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4월호
그래도삶은 계속된다 수상 안경수 법무사(경기중앙회) 좀 이른 퇴근시간, 문 앞에 도 착하자 큰 상자 한 개가 놓여있다. 언택트 시대라 하던가? 택배 문화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요즘,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문을 열고 발로 툭툭 차서 집 안으로 밀어 넣은 후, 보낸 사람을 확인한다. 형님이다. 가을걷이가 끝 난 지 오래, 새봄이 오는 터에 무얼 보내셨을까? 선물상자 앞에선 늘 가슴이 설렌다. 상자를 열자 비닐봉지에 별도 로 포장한 말린 대추와 봄 내음이 가득한 나물이 반긴다. 민들레다. 형 수님을 먼저 보내고 시골에 혼자 계 신 형님으로부터 수십 년 동안 농 촌의 각종 선물을 받아왔다. 그런데 민들레는 처음이다. 과일, 고구마와 고춧가루, 참깨 등 양념류가 주였고, 한때는 고향에서 많이 생산되던 복분자도 여러 차례 받았었다. 최근에는 얼어 죽은 복분자 나무를 캐내고 아로니아를 심었다며 6월경이면 몇 킬로그램씩 보내신다. 뜻 밖의 민들레. 이건 먹을거리가 아니라 봄이다. 멀리버드나무에파랗게봄이깃들고 탄천에서도 봄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산뜻하다. 따사로운 봄볕에 산수유는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지 오래고, 성질 급한 벚꽃 도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푸른빛이 도는 양지바른 언덕에 쪼그려 앉는다. 당장 뜯어 국을 끓여도 될 만한 탐스러운 쑥은 지천이고, 이름도 민망한 ‘큰개불알 꽃’이 청보라색 저고리를 입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다. 너무 일찍 나왔다가 꽃샘 추위에 혼쭐이 난 듯, 잔뜩 움츠린 ‘꽃다지’도 눈인사를 한다. 멀리 버드나무에 봄이 파랗게 깃들기 시작하고, 까치 한 마리가 우듬지 에 지어 놓은 집 앞에 앉아 봄을 부르고 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버들강아 지 꽃망울을 헤집어 보니 파란 봄을 잉태한 채 배시시 웃는다. 엊그제가 경 칩이었다. 요란한 인간사의 어려움과는 아랑곳없이 어느새 봄은 이렇게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와 있다. 탄천의봄, 기지개를켜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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