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4월호
산책길, 겨우내 두껍고 칙칙했던 산책객들의 옷이 눈에 띄게 밝고 가벼 워졌다. 자전거 길에는 줄잡아 50명은 되어 보이는 동호회원들이 일렬로 대 오를 이루어 질주한다.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옷과 날렵한 헬멧은 그 자체가 봄이고 구경거리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씰룩거리는 튼실한 허벅지의 젊음이 부럽다. 보행 로에는 마라톤 멤버들이 줄을 맞추어 뛴다. 얼마나 뛰었는지 어떤 사람은 등 에 땀이 배어나고 헉헉거리는 숨소리는 내 숨조차 가쁘게 한다. 땅을 내딛는 힘찬 발소리와 구령소리는 진동이 되어 탄천을 따라 여울진다. 물속은잉어천지, 물밖은구구구~ 비둘기세상 물속은 잉어 천지다. 겨우내 얼음장 밑에서 숨죽이고 있던 녀석들이 봄 냄새를 맡으려는지 물 위로 주둥이를 내밀고 푸른 하늘과 마주한다. 탄천에 몇 마리나 살까 궁금하다. 도대체 가늠이 안 된다. 광장의 집회 인원은 3.3㎡에 들어설 수 있는 인원을 9명으로 보고 면적 을 곱하는 소위 ‘페르미’ 방식으로 추산한다지만, 그런 방식으로 계산할 수 도 없을 터. 대략 5-6만 마리는 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냇물 곳곳에 많은 오리들이 연신 고개를 처박고 자맥질을 하고, 어떤 놈들은 달리기 시합을 하는지 줄지어 물살을 가르는 것이 길 위의 마라톤 선수들 같다. 몇 녀석은 모래밭에서 몸단장을 하고, 또 한 무리는 무얼 그리 생각하는지 풀밭에서 머리를 깃털에 묻은 채 ‘로댕’이 되어 있다. 물속이 잉어와 오리라면, 물 밖은 단연 비둘기 세상이다.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풀밭에서 풀씨를 쪼며 자유를 구가한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 에 던져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시내 공원의 비둘기에 비하면 얼마나 여유로 운가? 복 받은 녀석들이다. 그래서일까? 하나같이 몸이 오동통하고, 깃털은 방금 다려 입고 나온 양복처럼 반질거린다. 나무나 풀밭만이 아니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많은 다 리 밑 역시 이놈들의 차지다. 다리 밑에 촘촘한 그물망을 쳐 놓았는데도 어 찌 들어갔는지 교각 위를 모두 차지하고 구-우-우-구, 구-우-우-구 수다를 떤다. 생명이약동하는봄, 신발끈다시조여매고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일 년이 훌쩍 넘었다.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일억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270만 명 에 육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이 피폐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 로 모든 일상이 멈추어 섰다. 삶의 방식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삶의 의지는 꺾지 못한다. 코로나19 역시 방역과 백신의 개발로 단절과 멈춤이 끝날 희망이 보인다. 우리 앞 의 코로나19 신호등은 이제 막 파 란색으로 바뀌려 하고 있다. 겨울은 멈춤의 계절이다. 그러다 봄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나뭇잎과 꽃이 피어나고 모든 생물이 약동한다. 코로나19는 잠시 멈추어 서있 는 겨울에 불과하다. 코로나19는 동 굴이 아니고 터널이다. 겨울이 지나 면 반드시 봄이 오고, 아무리 길다 한들 동굴과 달리 터널은 끝이 있 다. 그러니 더 이상 실망하고 서 있 을 수 없다.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 고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 보행로 옆, 몸을 누인 갈대밭 엔 비둘기들이 모여 잔치 중이다. 녀 석들, 내가 착한 사람인 줄은 어찌 알았는지 어지간히 가까이 가도 도 망갈 생각을 않는다. 그러더니 한 마리의 강아지가 달려들자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날 아간다. 덩달아 내 마음도 하늘로 비상한다. 아, 봄이다! 두 팔을 힘껏 뻗어 기지개를 켠다.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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