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늘 타인의 확신에 기대고,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으면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기도 합니다. 나의 삶을 다른 이에게 내 줘버린 셈이죠. 또 다른 하나는 ‘간섭’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쥐락펴 락하는 것처럼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는 거죠. 가족 사이에서 흔하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이면서 업무관계나 연인관계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가까울수록 경계를 침범하기가 쉽고, 또 내가 타인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에요. 단지 나의 뜻을 강요하는 것만이 간섭은 아닙니다. 도와주 려는 마음에 과도하게 정성을 쏟는 것도 간섭이 됩니다. 한 어머니가 백수 아들이 안쓰러워 계속해서 물리적 지원 을 해주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막 고 있는 것일 수 있죠.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들의 인생에는 더 필요한 지원일 거예요. 많은 사람이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에 쉽게 개입하지만, 그게 진짜로 그 사람을 위한 일인지, 내 마음이 편 하고자 하는 일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과 내 몫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탓에 서로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더더 욱 의도치 않게 실수하게 되고 갈등을 겪게 되지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는 나, 너는 너’ 마인 드가 필요합니다.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열쇠임에는 틀림없어요. 심리학자 아들 러 또한 타인과 나의 과제를 분리할 것을 강조합니다. 과제의 구분 기준은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의 성적이나 진로, 결혼문제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녀 본인입니다. 부모가 간섭을 한다고 해서 그 결과 에 대한 책임을 부모가 질 수는 없지요. 자녀의 인생이니까요. 누구도 서로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기 때문에 선 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은 당사자 한 명입니다. 나는 나의 삶을 책임지고, 너는 너의 삶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나의 과제를 타인에게 떠넘겨서도, 타인의 과제를 내가 짊어져서도 안 되겠지요. 또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한 들 그에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내 인생의 결정권자는 결국 나니까요. 이처럼 타인과 나의 몫을 구분하는 것으로서 안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보세요. 타인은 거울과 같은 존재, 공감하는 관계가 행복 관계 속에서 충만감을 느낄 때 삶의 행복감이 커진다는 것 은 아마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 속 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존재니까요.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 옥”이라고 했지만, 작가 헤르만 헤세라면 다르게 생각할 것 같 습니다. 그의 소설 「황야의 이리」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내 내면에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에게 답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요. 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상대를 위한 거울이어서 서로 답을 주고받고 서로 조응하는 거지요.” 헤세의 말처럼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어서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찾고 이해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 다. 서로 조응하고 공감하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지옥이 아닌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함께하기 위한 지혜를 잊지 만 않는다면 말이죠. 가정의 달 5월입니다. 분주한 업무를 잠깐 내려두고, 가족 과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거 울과 같은 존재인 그들에게 온기를 나누기 위해서요. 많은 사람이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에 쉽게 개입하지만, 진짜로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과 내 몫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나, 너는 너’ 마인드가 필요해요.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열쇠임에는 틀림없어요.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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